김미라, 『예술가의 지도』, 서해문집, 2014.
알마 말러, 루 살로메, 베티나 폰 아르님, 이사도라 덩컨, 쉬잔 발라동, 거트루드 스타인, 조르주 상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성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여성 작가이면서 동시대 남성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예술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파리로 건너가 자리 잡은 파리 플뢰뤼 가 27번지 아파트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소개한다. “피카소와 마티스, 세잔과 마네 그리고 후안 그리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는 화랑이었고, 파리 특파원 헤밍웨이의 휴식처였으며 에릭 사티의 연주회장이었다. 피츠제럴드 부부의 파티장이었고,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마리 로랑생의 카페였”다고. 거트루드는 컬렉터로 유능해서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을 일찍 알아보고 우정을 나누었으며, 나중에 피카소 전기를 쓰기도 한다.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는 쉬잔 발라동의 연인이다.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쉬잔 발라동은 서커스단 곡예사로 일하다가 공중그네에서 떨어진 뒤, 몽마르트를 중심으로 해서 모여든 화가들의 모델이 된다. 르누아르의 정부라는 얘기도 들었으며, 자신의 그림 재능을 알아봐주고, 쉬잔이란 이름까지 지어준 로트레크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한다. 발레 그림을 많이 그렸던 드가의 격려에 힘입어 그림에 정진한다. 열여덟의 쉬잔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를 낳는다. 자신처럼 사생아가 된 아들은 뒷날 술주정뱅이에서 화가로 거듭난다. 술에 한참 찌들어 살 때 모딜리아니가 그의 벗이 되어준다. 모리스 위트릴로는 양부인 에릭 사티를 좋아했지만, 에릭 사티는 쉬잔과 크게 싸우고 결별한다. 에릭은 죽을 때까지 쉬잔을 그리워하지만 쉬잔은 유품으로 남은 사진(사티와 자신과 아들이 함께 있는 사진)에서 사티만 오려서 보관한다.
이후 쉬잔은 은행가 폴 무시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그림 모델이 되어준 스무 살 연하인 위테르와 사랑에 빠진다. 주변의 걱정스런 시선에 아랑곳없이 또 다시 결혼하고 헤어진다. 쉬잔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옮기면,
“그녀가 그린 <이브>처럼 쉬잔은 자신을 향한 온갖 손가락질에도 꿋꿋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거리낌 없이 살았다. 그것이 파괴적일지라도 자신의 영혼을 충족시키는 것이면 움직였고,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편견으로 가득한 기득권층을 자신의 방식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니체, 파울 레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그들을 파국으로 밀었던 루 살로메는 프로이트의 책상에도 그녀 사진을 놓아두게 한 여성이다. 스물두 살의 릴케는 서른여섯의 루 살로메를 만나 ‘르네 마리아 릴케’란 여성적 이름을 버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이름까지 바꾸며 그녀를 따른다. 니체가 그랬듯이 릴케도 그녀로부터 선택받지 못하고 마지막 유언을 루 살로메에 대한 이야기로 맺는다. 루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옮기면,
“루 살로메는 19세기 말을 살았던 여인으로서는 더없이 독립적이었다. 물려받은 유산도 없었고, 연인들의 부에 기대지도 않았다. 남성이 강요하는 역할을 떠맡지도 않았으며, 가족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도 않았다.”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노앙 출신이다. 귀족 출신의 아버지는 4살 때 낙마 사고로 죽고, 새 장수 딸인 어머니는 1년 뒤 양육권을 포기하고 딸을 떠난다. 할머니로부터 노앙의 대저택을 물려받은 상드는 이곳이 문화예술의 성지 역할을 하게 만든다. 프레데릭 쇼팽, 프란츠 리스트, 오느레 드 발자크, 외젠 들라크루아, 하인리히 하이네, 이반 투르게네프,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드나들었다. 고흐가 천여 통의 그의 편지로 말미암아 그림에 대해 얼마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지 알게 했듯이 상드는 무려 4만 통(밝혀지고 정리된 것이 1만 8000여 통)에 가까운 편지로 그녀가 몸담은 시대와 사람들에게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알게 해준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 후, 노앙 성과 양육권을 되찾기 위한 소송에 뛰어들었던 상드는 시인 알프레드 뮈세와 사랑에 빠진다. 알콜중독의 뮈세를 위해 요양 차 베네치아로 갔지만 주치의와 사랑에 빠지면서 파국에 이른다. 리스트를 통해 살롱에서 쇼팽을 만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이번엔 건강이 나쁜 쇼팽을 위해 마요르카로 떠나면서 그의 연인이자 보호자가 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상드가 마음을 여는 것은 언제나 여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조르주 상드가 1830년 어느 여성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라며 소개한 것을 재인용해둔다.
“산다는 것은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괴로움, 남편, 권태, 부채, 가족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는 고뇌와 끈질긴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도취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며, 행복입니다. 천국입니다. 아! 나는 맹세코 예술가의 생애를 살고 싶습니다. 나의 좌우명은 자유입니다”
황야의 7인보다 훨씬 개성이 강한 7인의 예술가를 만나는 시간은 즐겁다. 7인과 연결된 사람과 사건을 촘촘하게 엮었지만 잘못 알려져 있거나,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앞의 에릭 사티는 에드거 앨런 포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단다. 그는 검은 고양이 우산을 품고 파리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연주를 했다. 포의 또 다른 팬인 말라르메는 타히티로 떠나는 친구 고갱에게 포의 시집 『까마귀』를 선물함으로써 화가의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얘기도 삽화로 들려준다. 저자가 흥미로워하는 이런 대목이 덩달아 궁금해지는데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예술 지도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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