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희, 『안녕하세요, 세잔씨』, 아트북스, 2008.
- 화가이기도 한 저자가 세잔의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프랑스 지역을 답사하면서 그때그때의 세잔의 상황과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출발은 생트빅투아르 산이 보이는 엑상프로방스다. 당시엔 파리에서 기차로 16시간 거리다. 세잔은 평생 파리와 엑상프로방스를 줄기차게 오가며 지낸다.
그림 이야기와 별도로 에밀 졸라와의 인연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둘은 엑상프로방스 지역학교에서 5년을 같이 보낸 친구다. 졸라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세잔은 졸라를 편들고 졸라는 답례로 사과를 보낸다. “세잔의 사과”라는 말과 함께.
파리에 먼저 간 졸라는 세잔에게 파리행을 거듭 권유한다. 세잔은 은행장인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하고 법학 진로를 원하는 아버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때 보낸 졸라의 편지는 세잔의 운명을 바꾸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너는 성격이 모잘라. 피곤한 것은 쉽게 질색하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의 큰 문제점은 물이 흐르는 대로 놔두고 기회와 시기를 잘 봐서 정리하면 좋겠다. 만약 내가 너라면 나는 한마디를 원할 거야. 어떤 위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각오하겠어. 미술실과 변호사석, 두 미래의 갈림길을 두고 애매모호하게 노 젓고 잊지는 않을 거야. 난 네게 잔인하게 대하고 있어. 왜? 넌 고통을 받아야만 하니까. 그래야 이 불확실성 사이에서 닻을 찢는 새로운 동기를 얻을 테니까. 이것 아니면 저것, 진정한 변호사가 되든지 아니면 진정한 화가가 되든지. 어쨌든 무명으로 남지는 말아라. 물감으로 더럽혀진 변호사복을 걸친 채로 말이야.”(1860년, 이 편지글에서 “닻을 찢는”은 원문을 확인해보면 좋겠다)
저자는 이 글에서 둘의 우정을 확인하고 뒷날 둘이 깨어지는 사정을 마음 아파한다. 작가로 성공한 졸라가 소설 『작품』(1886년)에서 예술적 고뇌를 밀고 나가다가 자살로 마감하는, 실패한 화가를 등장시킨다. 문제는 그 주인공 모델이 세잔으로 여겨지면서, 세잔은 졸라에게 작별을 고하고 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단다. 저자는 “잔인하게 구는 것이 졸라의 방식이었다. 그래야 졸라는 세잔을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졸라는 성급하게 판단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세잔의 실험적인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둘의 관계를 정리한다. 세잔이 56세가 되는 1895년에야 첫 개인전을 열며 이후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개인전을 열게 해준 화상 볼라르는 세잔과 졸라의 극적인 해후가 안타까이 깨진 사연을 전한 사람이기도 하다. 내용인 즉,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엑상프로방스에 내려온 졸라를 기꺼이 만나러 가는 세잔은 그 길에 한 친구를 만나는데 그 친구 말이 전날, 누군가 세잔을 만나겠느냐는 질문에, 졸라는 ‘이미 죽은 사람과 뭣하러 만나겠느냐’고 대답했다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세잔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데 “세잔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는 내용이다.
두 예술가의 입장에 대해서 좀 더 공정하게 보려면 일단, 에밀의 『작품』을 보는 게 순서겠다.
끝으로 볼라르가 세잔에게 초상화를 부탁했다가 “세잔 앞에서 115번이나 포즈를 취해야 했”고 조금 움직일 때마다 불평을 들어야 했다는 「앙부르아즈 볼라르의 초상」(1899년)을 감상하자.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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