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그 울음의 지척 / 김명리
그 여름,
바람이며 물빛
몰아오던 파도소리로 사립을 해달은 바닷마을의
그 눈물겹게 달아오르던 민박집 문간방
경상도 사투리로 철썩이던
밤바다 파도소리를 기억하지
졸린 눈에는 겹망사 푸른 면사포 같을 밤구름 아래
그 집 안마당 늦도록 물 듣던 수돗가까지
귀쌈 맞고 멱살 잡혀 새하얗게 끌려왔을 어린 파도
먹먹한 울음 끝 한쪽 귀 영영 놓아버렸을지도
어쩌면 내 마음 그토록 저물었던 그곳, 그 울음의 지척,
깊게는 저 해연(海淵) 웅크린 소라 바지락 꼬막 속까지
곳곳 송곳니, 서슬 푸른 시간의 날랜 쇠고둥들 아니었으리
끝내도 못 떠나온 내 쓰라린 맨발 아니었으리
ㅡ『적멸의 즐거움』, 문학동네, 1999.
* 그 여름 바닷마을의 정취가 한 폭 수채화 같으면서도 실제 바닷마을 민박집 문간방에 든 듯이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파도소리로 사립을 해달았다는 표현도, 그 파도가 경상도 사투리로 철썩인다는 표현도 단순한 시청각 이미지를 넘어서서 활동 영상처럼 연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끔 돕는다.
오래전 그날의 문간방은 울음으로 흥성하다. 수돗물 듣는 소리는 이쪽의 울음을 눈치 못 채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예까지 온 파도 소리를 그대로 통과시킨다. 그 소리는 귀싸대기 맞고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닮았다. “먹먹한 울음”의 정체는 파도소리인가 하면 내 안의 울음이기도 하고 또, 둘이 섞여 밤새 뒤척이며 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울음의 지척이란 표현에선 울음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이나마 여유를 두려는 모습이 보인다. 시의 내용과 무관하게 낭만적인 느낌도 주지만 그때만큼은 “서슬 푸른 시간”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슬픔의 한때를 지나고 있었을 테다. 쇠고둥은 조개에 구멍을 뚫고 속살을 파먹는 존재이니 “쓰라린 맨발”로 남은 쇠고둥의 시간은 사실, 울음의 한복판이 아닌가.
그때로부터 “끝내도” 못 떠나온 상태라고 시인은 적고 있지만 날카로운 송곳니와 푸른 서슬이 조금씩 무뎌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시편도 그때의 “쓰라린 맨발”에게 보내는 위로와 화해의 손짓이기도 할 것이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끄시는 대로(아! 해당화) / 마선숙 (0) | 2018.11.30 |
---|---|
헤밍웨이 집 / 정하해 (0) | 2018.11.28 |
엄마 돼지 여섯 마리 / 박기영 (0) | 2018.11.17 |
몽상가와 청소부 / 이령 (0) | 2018.11.11 |
자연 공부 시간 / 최춘해 (0) | 2018.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