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너 없이 걸었다』, 난다, 2015.
- 진주역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곧잘 빠지던 소녀는 막연하게, 삼척역을 그리기도 하다가 어떤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어른이 된 소녀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기차로 세 시간 반 거리인 뮌스터 역에 닿는다. 이 책은 진주 소녀였던 허수경 시인이 뮌스터 곳곳을 산책한 기록이다.
그곳의 시인, 장소나 건물이 갖는 역사적 의미도 얘기하지만 서울과 진주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기도 한다,
라인강, 로렐라이, 하이네 이 셋은 떼기 어렵지만 독일이 하이네를 오랫동안 불편하게 여겼던 이유, 김남주 시인이 그 하이네를 옥중에서 번역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만날 것은 만나게 된다는 생각을 전한다. 여행은 만남을 촉진시키는 매개가 되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는 것도 만남의 일종이긴 할 거다.
잘츠 슈트라세 거리를 걸으며 그곳 도시 박물관이나 40년에 걸쳐 복구된 바로크 건물 에르브드로스텐호프를 지날 때 시인은 “오라 네 입술을 열어라, / 말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고트프리트 벤, 「오라」중)를 인용한다. 시인은 이 시를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심정을 거의 외침에 가깝게 쏟아낸 시로 소개한다. 시인도 외로움을 감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특정한 사람들을 그리며, “이 거리에서 내가 그렇게 자주 오라고 불러대던 사람들은 아마 다른 거리에서 나를 오라고, 그렇게 자주 불러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시인은 도서관이나 책방에 들리는 것을 좋아한다. 인근 시립도서관에선 책을 만났을 때의 감회는 이렇다.
“만일 네가 나를 읽어준다면 나는 네가 꿈꾸던 세계로 널 데리고 갈 것이다,라는 나직한 속사임과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조바심 속에서 꿈꾸는 책들”
뮌스터아 강을 따라 산책할 때 시인이 본 꽃가게 이름은 ‘푸스테블루메’(민들레)인데 불면 날아가는 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단다. 시인은 인간의 삶도 이 이름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꽃씨들은 가벼움으로 이 세계 속으로 날아들어 어딘가 다시 정착할 땅을 찾는다. 가벼움이라는 생물학적인 존재의 특성이 그들의 번식을 보장한다”고 했다. 허수경 시인은 이제 가벼워졌다. 떠날 권리와 돌아오지 않을 권리를 말하던 시인은 한국을 떠났고 아주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되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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