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어머니

톰소여와허크 2019. 5. 19. 11:46

막심 고리끼(최윤락 역), 어머니(1907), 열린책들, 1989.

 

 

- 고리끼의 어머니는 김남주 시인의 시 <선반공의 방>에 있었던 책 이름이며,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권정생 선생이 동질감을 느끼며 읽었다는 책이다.

내용은 남편에게 매를 맞고 순종적으로 살기만 하던 어머니가 노동운동을 하는 아들 빠벨의 뒤를 이어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선다는 얘기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찾아 책을 뒤적여본다.

신에 대해 논쟁하며 그걸 받아들이는 가슴이 중요하다는 르이빈는 이성이 중요하다는 빠벨의 입장에도 동조하며, “옳은 소리야! 요컨대 신은 가슴과 이성 안에 있지 결코 교회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교회는 신의 무덤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교회가 잘못된 권력을 뒷받침하며 민중의 반대편에 서기도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목소리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따르며 실천하면 그뿐 기도는 자기 방에서 하면 된다고 했던 권정생 선생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교회 종지기로 오래 일했던 권정생은 교회가 비대해지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빠벨이 노동쟁의를 주도한 끝에 감옥으로 간 뒤, 전태일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빠벨의 어머니도 빠벨의 동료를 자식으로 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글을 익히며 아들이 원했던 세상을 알아간다. 동지인 우끄라이나인은 슬픔의 원인을 사람들이 평등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가 바라는 세상은 이성으로 만들어 낸 모든 것, 손으로 가공한 모든 것을 똑같이 나눈잔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공포와 질투의 노예로 속박하지 않도록, 탐욕과 무지의 포로로 억압하지 않도록하는 곳이다.

민중들이 인내력을 갖도록 기도해 달라는 사제의 말에 르이빈의 기도 내용은 장난스럽지만 작가 고리끼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확인시켜 준다. “주여, 주인 나으리께도 벽돌 나르는 법과 돌을 쌓는 법, 그리고 장작 패는 법 따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는 언명 속엔 노동을 차별하거나 차별 대우하는 모든 인식과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뜻이 분명히 들어있다.

 

또 다른 동료 소피야는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한 민중의 전세계적인 투쟁을 말하며 그들의 고통이 더 나은 세상으로 결실할 것을 말한다. 어머니는 이들을 걱정하고 응원하며, 자신도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 운동 전단지를 몰래 뿌리는 일을 맡아서 행한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에 없이 투명하게 인식된다.

어디를 가나 인간을 속이고, 무언가를 우려내고, 저만을 위해 더욱 많은 것을 착취하고, 피를 빨아먹고자 하는 지독히 적나라하고 파렴치할 정도로 노골적인 욕망이 명백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이 세상엔 없는 것이 없다지만 항상 궁핍하고, 그저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많은 재물의 주변에서 죽지 않을 정도로 배를 채우며 사는 민중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도시들마다 정작 하느님에겐 하등 쓸모도 없는 금은보화로 가득한 사원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 반면에, 바로 그 입구에는 동전 한 닢이라도 어떻게 손에 쥐어 볼 수 없을까 고대하며 벌벌 떨고 있는 거지들이 바글바글했다. 전에도 그녀는 그러한 것, 이를테면 돈 많은 교회들, 금실로 바느질한 사제복, 그런가 하면 구차한 민중들의 판잣집이나 웃음거리밖에는 안되는 누더기 옷들을 보아 왔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것이 구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모욕적인 일이며, 교회 또한 있는 자들에게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가깝고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농가에서 들은 이야기도 노동과 함께 노동운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을 돕는다. “허구헌 날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애들이라도 태어나는 날이면 먹이는 건 둘째 치고 돌볼 시간도 없으니……. 빵조각 하나 제대로 얻지도 못하는 그 놈의 일은 해서 뭣 하느냐 말예요.”라는 푸념을 들으며 어머니는 결의를 다진다. “전체 민중이 하나 되는 그날까지, 한 목소리로 <나는 주권자니 모두의 평등을 위해 법을 만들겠노라고 소리치는 그날까지 팔짱 끼고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어머니가 최후로 맡은 전단지는 바로 아들 빠벨의 재판 최종 진술문이다. 일부를 옮겨본다.

우리는 혁명가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령만 하고 어떤 사람은 일만하는 사회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런 혁명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화해할 수 없는 적에 의해 이익을 지키라고 명령되어진 그런 사회에 대항할 것이며, 우리가 승리하는 그날까지 우리들 사이엔 화해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노동자들은 승리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신임자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강력하지 못합니다. 수백만 예속된 민중을 희생시켜 가며 모으고 지킨 그 재산, 민중들을 지배하도록 해 주는 그 힘은 지금 민중들 내부에 적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당신들 자신을 육체적,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지나칠 만큼의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본래 당신들, 우리의 지배자들은 우리보다 더 노예인 것입니다. 당신들이 정신적으로 예속되었다면 우린 단지 육체적으로 예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결말은 정신적으로 예속된 하수인들이 어머니를 검거해서 마구 패는 장면이다. 불쌍한 것들이라는 어머니 말에 그녀에게 대답하기라도 하듯 군중 속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라는 구절로 끝을 맺는다. 그 흐느끼는 소리를 내 가슴이 듣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