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선숙, 『몸이 먼저 먼 곳으로 갔다』, 불교문예, 2018.
저자는 쉰 중반의 나이에 대학 공부를 시작했고, 예순을 넘겨 시와 소설로 각각 등단한 뒤 시집 출간에 이어 일흔이 되어서야 소설 창작집을 묶은 이력을 갖고 있다.
일곱 편의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 『몸이 먼저 먼 곳으로 갔다』를 읽으면서, 저자가 이야기 주머니를 간직한 채 오래 습작해왔음을 짐작케 한다.
「노랑머리」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결말이 충격적으로 와 닿는 작품이다. 노랑머리 어머니는 아버지 모르는 ‘나’를 낳았고 ‘나’에게 무관심했다. 절에 행자 노릇을 할 때 한때 노랑머리였던 사내는 ‘나’를 못살게 군다. 인연이 된 노랑머리 아내는 ‘나’를 남편으로 대우하지 않고 매몰차게 닦아세우며 약점을 잡아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를 역성들어준 석이가 선물로 내준 분재는 하필이면 이름이 좀팽나무다. 장모가 ‘나’를 좀팽이로 취급한다든지 지붕 밑으로 들인 개가 좀팽나무를 귀하게 여겼다는 장면과 맞물려 유머러스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모욕과 굴욕을 감당하는 대신 아내의 집을 뛰쳐나온 ‘나’는 버림받은 개에게 정을 주며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을 여전히 무시하는 아내의 태도에 한순간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그 분노의 방향은 아내가 아니라 개다. “내가 우습게 보여? 나를 가지고 놀아?” “비겁하게 왜 눈치 봐(…)”라는 외침과 함께 벌어진 끔찍한 일들은 외부의 몰인정과 축적된 자기혐오가 가학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고 마는 심리적 현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흥분을 다스릴 시간적 여유,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한 행동이 아쉬울 순 있지만 저자의 선택은 그런 타협 대신 어둡고 추한 면을 그악하게 드러내서 감정을 수습하는 데 애를 먹게 하는 쪽이다. 비참한 파국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분위기와 인간성 문제를 더 충격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인 「흑백사진의 집」도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인숙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외따로 지내는 외로운 처지다. 삼대가 같이 산다는 대가족의 근수에게 끌린 이유다. 다른 배경은 보지 않고 인숙이면 된다는 말에 혹한 이유도 있다. 결혼 삼 년 만에 인숙은 근수의 게으름과 무책임을 알게 되고, 결정적으로 사랑을 의심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몰래 아이마저 지운다. 집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있던 인숙은 시부모의 다툼을 엿듣는다. 평소 온화하고 고분고분하던 시모가 불만을 이야기하며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장면이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였던 집안은 시조모가 버릇처럼 외는 말처럼 쿵쿵 울리며 바닥부터 꺼져가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시조모의 실종으로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 속에 인숙은 마당으로 나온다.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듯 주위를 둘러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한걸음 발을 떼어 놓았다”는 마무리 구절처럼 걸어서 문밖으로 나가든 다시 집안으로 들어오든 선택은 자기 자신의 몫임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의 이번 소설집도 그런 선택의 연장선상에서 결실한 값진 선물일 게 분명하다. 문득, 화분 속 좀팽나무보다 벌판의 팽나무로 살고 싶다는 내 안의 좀팽이 소릴 들은 것도 같고…….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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