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 단편소설은 현실의 한 단면을 핍진하게 드러내서 감정을 고양시키며 재미를 주거나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중에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해주는 소설이 눈에 오래 남는다.
김애란의 소설도 그렇다. 「입동」의 경우, 이십여 년간 셋방 살던 부부가 은행 빚을 내어 24평 아파트를 장만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가졌고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집을 얻으니 내심 뿌듯해 하는 가운데 아내는 부엌 쪽 인테리어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쓴다. 아이를 돌봐주던 어머니가 복분자 뚜껑을 열다가 내용물이 터지면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공 들였던 벽지까지 얼룩으로 덮인다. 아내는 어머니 걱정보다 벽지 얼룩진 것을 더 속상해한다. 사실, 인생의 어느 장면에선가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누군가의 기대치에 반하는 실망스런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맘이 상한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간다.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는 후진하는 차에 치여 사망한다.
그 뒤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벽지를 새로 바르게 되는데 벽지 한쪽에 쓰인 아이 낙서에 부부는 눈물을 훔친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도 없어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는 구절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드러낸다. 입동에 즈음한 날의 쓸쓸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벽지로 옛 흔적을 지우고 또 살아야하는 게 삶이다.
또 다른 풍경 하나는 「가리는 손」이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남편 없이 키우는 어머니는 얼마 안 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아이 교육에 쓰다시피 하고 아이는 차별 속에서도 잘 자라준다. 그런 그 아이가 노인 학대 동영상에 나오는 가해자 네 명 중의 한 명이 되어 어머니는 마음이 착잡하다. 다행히 노인에게 물건을 던지거나 발길질을 한 아이는 따로 있고, 동영상에 잡힌 아들은 놀란 눈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그러다 어머니는 우연찮게 아이의 미소를 보고 문제의 동영상에 있던, 손을 가리고 놀라던 아들의 표정과 겹친다는 걸 안다.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다면 아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준 것은 무엇일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된다. 문 안에 있기를 바라며,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려 애쓴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주는 건 아니다. 어떤 기대치로 움직여지는 삶이라면, 삶은 선의로 가득 차고, 저마다 행복해야 할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유전적 유인, 환경적 요인으로 애써 나눌 필요도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이 어떻게 자아를 형성하고, 행동하게 하고, 타인에게 간여하게 되는지 세상은 비밀투성이다. 소설 쓰기와 소설 읽기는 그 비밀을 한 꺼풀 벗기려는 나름의 꿍꿍이가 작용하는 시간이다. 소설 표지 그림(Heather Evans Smith 작)처럼 소설은 문 밖의 세계로의 유인이다. 안팎의 모험이 인생의 깊이를 줄 거라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프랑켄슈타인 (0) | 2019.07.06 |
---|---|
<에세이> 아무것도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0) | 2019.06.30 |
<에세이> 책방 풀무질 (0) | 2019.06.06 |
<소설> 몸이 먼저 먼 곳으로 갔다 (0) | 2019.05.21 |
<소설> 어머니 (0) | 2019.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