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나날 / 최승자

톰소여와허크 2019. 8. 11. 09:54

나날 / 최승자

 

 

옛날에 옛날에

애매와 모호가 살았는데,

둘은 죽을 때까지

서로 싸웠다.

 

너는 왜 그리 애매하냐고,

그럼 넌 왜 그리 모호하냐고,

둘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싸우며 죽어갔다.

 

정신분열증과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며 죽어갔다.

 

-『기억의 집, 문학과지성사, 1989.

 

 

* 이상 시인은 거울에서 거울 앞의 나거울 속의 나가 악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포착하여 시를 쓴 바 있다. 이 시를 두고 현실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 혹은 일상적 자아와 이를 성찰하는 반성적 자아 사이의 자아분열을 다룬 시로 소개되곤 한다. 신문에 연재되던 오감도 시편들이 미친놈의 잠꼬대란 소릴 들으면서 끝내 연재가 중단되자 이상은 정신병이나 고치고 오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이는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비웃는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현실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의 통합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경우라고 하겠다. 자아에 매몰되지 않고, 또 하나의 나를 분리시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은 성숙한 인격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이 마냥 조화로울 순 없다. 자아의 통합은 오히려 이상에 가깝고 자아 간 서로 불화할 때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부의 생각은 혼란스럽고, 행동과 생각은 불일치하며 그런 자신을 근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상 시인이 거울 앞의 나와 거울 속의 나로 자아분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면 최승자 시인은 더 나아가서 어느 쪽이 현실적 자아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두 자아의 모습을 애매와 모호로 표현했다. 애매도 불분명하고 모호도 불분명한 것이니, 분명한 것은 아주 없다. 분명하지 않다 보니 두 자아는 언제든 싸운다. 참된 자아를 다투는 것으로 좋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싸우며 죽어갔다고 거듭 얘기하니 그리 생산적인 다툼은 아니고 정신분열증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애매와 모호를 자기 내부의 다툼으로 볼 수 있지만 자아와 타자 간의 관계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 세상은 애매한 나와 모호한 너일 뿐인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상대를 부당하게 규정짓고 함부로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렇다면 이 역시 생산적인 다툼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승자 시인은 애매하고 모호한 자신과 개개인을 누구보다 철저하게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위선을 쓰고, 가면을 쓰면서도 어떤 의심도 갖지 않는 부류에 비하며 애매모호한 다수는 사랑스럽다. 거울 앞의 이상 시인처럼, 최승자 시인이 던진 애매와 모호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가린 것을 열고 어리석음을 줄이려 노력하되, 애매한 것은 애매한 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요긴해 보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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