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삼 형제 / 김영빈
비바람이 심한 날엔
가끔 별이 씻겨 내린다
오리온이 잠에서 깨면
휑해진 가슴을 더듬으며
없어진 별들을 찾고 있겠다
제비꽃 / 김영빈
입동이 코앞인데
철모르는 어린 제비꽃 하나
벽에 기대어 곤하게 잠이 들었다
담요라도 가져다
따뜻하게 덮어주고 싶었다
- 『세상의 모든 B에게』, 놀북, 2019.
감상 : 김영빈 시인은 동물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둘리툴 선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두더지와 장난치기를 좋아하며, 외벽 공사로 위기에 빠진 딱새를 구출해서 다시 가족 품에 돌려보낸 일도 있다. 하수오와 으름 싹도 잘 건사하며 동식물과 거의 친구 사이로 지낸다.
그런 김영빈 시인이 사진시집을 냈다. 시집을 처음 내는 시인과 책을 처음 내는 편집자가 죽이 잘 맞아 산뜻하고 개성적인 시집이 되었다. 내용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두고 사진을 배치했는데 매 장의 편집이 같은 게 거의 없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 중에 사물을 보는 눈이 돋보이는 작품과 시인의 마음결이 훤히 짚이는 작품을 하나씩만 보자.
「별 삼 형제」에 대상이 된 그림은 잎새에 앉은 물방울(이슬방울)이다. 세 방울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삼 형제를 대응시키는 것까지는 일상적인 사고 안에 있다고 하겠지만 시인은 오리온 별자리를 연상한다. 겨울밤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오리온자리는 거인이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 방패를 든 모습이지만 더 유난하게 빛나는 것은 몸통을 이루는 네 별과 그 안에 나란히 박힌 세 별이다. 거인의 심장과 같은 세 별이 지난 비바람에 잎새에까지 씻겨 내려왔다는 발상은 참으로 묘하고 재미난다. 삼 형제로 지칭된 세 별은 비바람을 핑계로 세상 구경 나왔다가 정체가 드러날까 봐 잔득 긴장해 있는 모습이다. 다행히 엄한 아폴론 대신 선량한 시인에게 들켰으니 별 일은 없을 것이다.
「제비꽃」의 꽃은 살짝이나마 벽에 머릴 대고 있는 형상이다. 열에 아홉은 흔한 풍경으로 그냥 지나치고 말 일인데 시인은 거기서 피곤에 지쳐 잠든 아이를 연상한다. 게다가 주변 환경도 아이를 더 안쓰럽게 만든다. 겨울 초입의 써늘한 날씨에 노출된 제비꽃을 애잔하게 보는 마음이 사람에게 옮겨와 깊은 휴머니티를 보여주기에 이른다. 시집 제목을 「세상의 모든 B에게」로 뽑은 것도 그런 마음의 연장일 것이다. 시인은 “고개 들어! / 누가 뭐래도 / 너는 A니까”(「세상의 모든 B에게」 전문)라고 했지만 B라서 B끼리 더 반가운 이야기들이 시집 곳곳에 숨어 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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