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에게 / 김수상
세면대가 막혔다
관은 빠져나가라고 만든 길
일자로 만들면 될 일을
왜 구부려 놓았나
그건 전문가에게나 물어볼 일
물이 한 일은
그저 관을 따라 흘러간 일
물은 한 번도 관을 의심한 적이 없네
난관의 짝은 봉착
물에게만 내어준 길을
물 아닌 것들이 따라 들어가
오물 덩어리가 된 것
쭉 뻗은 길만 있다면 무슨 재미인가
사는 일은 난관 쪽으로 나있다
인간의 창자가
구절양장으로 굽은 까닭이 다 있다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 시와반시, 2019.
감상- 세면대 밑의 배수관은 U자 형이 많은데, 꺾인 부분으로 인해 물이 덜 빠지거나 막히곤 한다. 시를 따라 읽으면서 같은 고민이 생겨 검색해 봤더니, 꺾인 부분에 늘 고여 있는 물로 인해 밑의 하수도에서 올라오는 가스 냄새를 줄이는 기능이 있단다. 시인이 전문가에게 물어보라고 했을 땐 이미 관련 지식을 두루 섭렵했을 것이다.
그런 지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편했던 마음을 풀고 나면 더 이상 시가 설 자리가 없다. 시는 끝내 불편을 풀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더해갈 때 생긴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비틀고, 쥐어짜고, 바꾸고, 확장하면서 기어이 막힌 것 하나가 빠져나올 때, 그래서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의미 있는 새로운 발견임을 확신할 때 비로소 좋은 시가 빚어졌음을 예감할 수 있다.
시인의 발견은 관이 구부려져서 물이 빠지지 않는 것을 난관으로 읽은 데 있다. 원래 난관(難關)의 의미는 ‘걸어둔 빗장으로 지나가기 어려운 지경’이지만 시인은 이를 ‘구부러진 관(管)으로 어렵게 된 사정’이란 의미인 난관(難管)이란 절묘한 단어를 조합해내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어떻게 읽든 간에 난관에 봉착하게 된 처지지만 시인은 슬그머니 이 상황을 “난관의 짝은 봉착”이란 유머러스한 말로 돌려서 여유를 갖게 된 마음을 보여준다. 난관에서 배움이 있었기에 생긴 여유다.
이런 깨달음과 여유는 이전의 상황을 차원을 달리해서 보게 한다. 처음에는 구부러지고 막힌 것이 불만이었지만 “쭉 뻗은 길만 있다면 무슨 재미인가 / 사는 일이 난관 쪽으로 나있다”며 삶의 의미와 그걸 바라보는 자세까지 조정하고 있다. 난관에서 빗장을 부수고 장벽을 넘는 열심만이 능사는 아닌 듯하다. 어떤 경우는 난관이 밖에 있는 게 아니고 자신의 마음에서 키우고 있기도 할 것이다. 난관을 통해 좀 더 깊어진다면 다음 난관의 열쇠를 갖는 일은 아닐까 하고 시인에게 물으면, 난관에게 물어보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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