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구름시 오후 / 권지영

톰소여와허크 2020. 4. 13. 23:05




구름시 오후 / 권지영

 

 

토요일 오후에 기대어 바라본 구름의 모양은

옅게 펼쳐져 아래로 아래로 동동동 떠다녔다.

고층 아프트에 걸리지도 않고

어느 한 군데 뜯기지도 않은 채 느리게 흘러들었다.

지구인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산 너머 노을을 찾아가는 구름 행렬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시작되는 곳으로

해를 따라간다.

오늘의 내 나라는

구름시 노을도 태평국

 

그곳은 해가 지는 곳이지.

세상이 시작되는 곳.

지금 시각은 오후 구름시 뭉게분 둥둥초

그대를 기다리기 좋은

오후 530

 

누군가 두고 간 슬픔, 푸른사상사, 2018.

 

 

감상 : 라면을 먹더라도 토요일 오후에 먹는 라면이 제일 맛이 난다. 내일 출근할 걱정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그럴 테다. 빨래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중에 마음이 느긋해지기도 하고, 여행을 하거나 약속을 기다리거나 하는 중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때마침 산 너머 가는 뭉게구름에 눈을 줄 것 같으면 세상이 한층 평화로워 보이겠다.

이 반가운 토요일도 원래 휴일로 누렸던 건 아니다. 1970년 법정 노동시간은 18시간, 토요일까지 48시간이 기본이었다. 연장 근로 12시간 허용은 지금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당시에 실제 노동 시간은 하루 14시간이 다반사였고, 결국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한 일을 알고 있다. 토요 반공일(半空日)을 지나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주 5일제를 적용시켜 2011년을 지나서야 지금의 토, 일 휴무를 갖게 되었다. 2018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업장 별로 적용 시기를 달리해서 주 540시간 노동을 기본으로 정해두었으니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는 듯도 하다.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지 근로기준법을 꼼꼼히 살펴야겠으나 고용 불안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노동은 신성하고, 노동 제공에 대한 대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평등해져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이런 믿음과 별개로, 이 세상에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생계를 위해 산다면 이 또한 여간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만 좇을 게 아니라, 구름 행렬을 좇는 구름시 노을도 태평국에 살면서 먼 데 눈을 주기도 하고, 주변의 것을 챙기기도 하면서, 게을러지기도 하는 것이 참말로 긴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좀 더 생산적인 삶을 위하여, 이전의 생산적이라고 믿었던 일을 줄이고 주 4일제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뭉게뭉게 든다. 노동이 휴식을, 휴식이 노동을 존중해주는 구름시 주민으로 살 것 같으면, “오후 530”, 그대 오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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