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당분간 인간』, 창비, 2012.
- 8편의 단편소설은 대강 고갱이를 추리면 직장생활의 고달픔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노우맨’은 기록적인 폭설에도 불구하고 회사 출근을 서두르다가 유대리와 김대리가 차례로 눈길에 파묻히게 되는 내용이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는 회사 일과 가사로 시달리던 여자가 로봇도우미로 당장의 부담을 덜다가 모든 걸 로봇에게 다 빼앗기게 되는 내용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당분간 인간’에선 두 명의 회사원이 등장한다. 전임자와 후임자다. 이전 회사에서 밀려나 실업급여를 받던 후임자가 다른 회사에 어렵게 취직해 인수인계 관계로 전임자를 만난다. 전임자는 몸이 점점 말랑말랑해져가고 후임자는 점점 딱딱해져간다. 직장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주원인으로 보인다.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만 버텨내면 다닐 만할 거예요.”
전임자의 말이었지만 경쟁 위주, 실적 위주 사회에서 이를 피해가기 어려웠는지 후임자는 잘못 올린 결재서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저번에 있던 사람은 물러터져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더니…… 이번엔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고 뻣뻣한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이 부서져내리는 걸 느낀다. 결국, 전임자는 젤리가 되고, 후임자는 부스러기가 되고 만다.
‘당분간 인간’은 다소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 하의 직장 생활의 고충이나 황폐화된 인간관계를 떠올려보게 한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에선 주인공 사내가 사물이 되어가고, 한강의 ‘내 열자의 열매’에선 주인공 여자가 식물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나오니, 서유미의 ‘당분간 인간’이 유독 기이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상력의 쓸모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소설에 재미를 더하게 하고, 현실에 대한 인식마저 새롭게 하도록 돕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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