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살림, 2018.
시인이며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2017)에서 “삐딱해야 할 부분에서 삐딱한 것이야말로 정의롭고도 자유로운 삶”이라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밥 딜런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것도 일상의 기대와 보편의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삐딱해지려는 밥 딜런의 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노래와 음악가에 무지한 나로선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도져 밥 딜런의 주요곡으로 꼽히는 <구르는 돌처럼>을 찾아서 듣는 시늉을 해본다. 1절 가사만 옮긴다.(영어에도 무지한 내가 번역을 약간 고치면서까지)
Once upon a time you dressed so fine
You threw the bums a dime in your prime, didn't you?
People'd call, say, "Beware doll, you're bound to fall"
You thought they were all kiddin' you
You used to laugh about Everybody that was hangin' out
Now, you don't talk so loud, now, you don't seem so proud
About havin' to be scrounging around for your next meal
(후렴)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Just like a rolling stone?
옛날 옛적, 너는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고
너의 전성시대에, 부랑자에게 동전을 던져주기도 했지, 그렇지 않니?
사람들은 말했지 “조심해라 얘야, 그러다 곧 추락한다”
너는 모두 농담인 줄 알았겠지
너는 주변에서 빈둥거리는 모두를 비웃곤 했어
이제, 넌 큰소리로 얘기하지 않지,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후렴)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야?
집 없이, 집으로 가는 방향조차 모른 채
완전히 무명이 된 것처럼,
마치 구르는 돌처럼
- 밥 딜런, 〈Like a Rolling Stone〉부분, 1965.
가사 내용은 상류계층 여성이 그들만의 고급문화를 누리다가 어떤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바닥까지 몰락해 이전에 자신이 동정을 표시하던 부랑자 계급과 동일한, 철저한 무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춘향이나 신데렐라가 신분상승하는 구조와 정반대되는 상황이긴 하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그 추락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다. 구르는 돌의 주체가 특정 누구일 수도 있지만 밥 딜런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주체는 규범에서 일탈한 존재이며 따라서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주체, 완전히 무명인(a complete unknown)인 주체이다. 그것은 구르는 돌처럼 무엇 되기(becoming)의 과정 속에 있는 주체”라고 했다. 영원히 견고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당장의 견고해 보이는 대상과 현상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의심하는 주체”는 필연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밥 딜런이 전쟁 반대, 차별 반대의 전위에 있다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도, 통기타에서 전기기타로, 포크에서 록으로 또 그 모든 것에서 또 다른 것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자신을 어떤 틀에 가두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작용으로 본 것이다.
저자는 밥 딜런을 통해서 자신의 예술론을 피력하는 듯도 하다. “무엇보다도 딜런의 세계는 클리셰(상투성)를 혐오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목표가 없다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그 모든 클리셰로부터의 끝없는 탈주이며, 이 탈주의 동력을 상실하는 순간, 예술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과거와 끊임없이 작별을 고하려는 존재라고도 얘기했다.
밥 딜런은 노벨상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보상받았다(반대 해석도 있지만). 수상 소감 연설문에서 멜빌의 『모비 딕』을 길게 인용했다는데 전문이 쉽게 검색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연설문보다 아래의 저자의 말이 더 인상적일 것 같다.
“에이헙 선장의 작살을 피해 끊임없이 도망치는 모비 딕처럼, 딜런의 음악은 그 어떤 의미의 닻에도 포획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을 어떤 식으로든 고정시키려는 사람들은, 마치 작살로 명중시켰으나 고래에게 끌려 바다 밑으로 침몰한 에이헙 선장처럼 마침내 포획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제, 밥 딜런의 구르는 돌을 한 번 들여다본 것에 만족하고, 딜런의 음악보다 문고판으로 대충 본 『모비 딕』을 언제 다시 읽을 거냐는 숙제를 남겨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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