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문학의 위안

톰소여와허크 2020. 12. 13. 21:30

정지창, 문학의 위안, 한티재, 2020.

 

 

책 표지는 에두아르 비야르의 <The Artist's Paint Box and Moss Roses>(1898). 실제 장미보다 그림 속 장미가 그윽해 보일 때가 많다. 현실보다 작가의 시선과 해석을 거쳐 가공된 현실이 더 핍진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와 닿는 슬픔이나 위안의 정도도 더 풍성하고 깊다.

문학의 위안은 소설, , 희곡 등 작품이 갖고 있는 울림의 배경을 따져보며, 이를 시대 모습이나 작가 태도와 연결 지어 의미를 확장해간다. 충실한 독서의 기록이기도 한 이 책은 동시에 책 안팎의 이야깃거리를 재생산하여 독자에게 되돌려준다.

 

저자는 이호철 소설가에게 세배 다니던 풍경을 회상하며, 어느 이발소에서를 소개한다. 소설 발표시기인 1965년은 군사정변 이후 반공 이념을 강조하던 시절이다. 이발소에 등장한 청년은 다짜고짜 빨갱이 운운하면서 민주주의 좋아하지 마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청년은 이발소 손님과 이발소 직원을 혼쭐내며 군기를 잡는다. 저자는 힘을 가진 세력이나 그걸 등에 업고자 하는 사람들의 막무가내 횡포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들의 반응에 주목한다. “심리적인 위축상태에서 자기주장이나 객관적 판단을 포기하고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하는 좀비로 변해버린다. 그들은 강압적인 지도자가 주입한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생각으로 내면화하고 이렇게 내면화한 이데올로기를 평생 자신의 소신으로 굳게 믿으면서지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호철의 고향은 함북 원산이다. 최인훈은 회령 출신이지만 원산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작가다. 저자는 최인훈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도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다. 최인훈의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박태원의 동명 소설에 대한 오마주다. “식민지 지식인 박태원이 만보객으로 경성 시내를 어슬렁거리며소설을 쓴 것을 두고, 저자는 파리에서 독일의 유태인 망명 지식인 발터 벤야민이 만보객으로 시내를 어슬렁거리며원고를 쓰는 것과 연결시킨다. 박태원은 월북해서 소설 쓰기를 이어가지만 벤야민은 나치의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최인훈이 내세운 구보 씨는 소설에서 샤갈 특별전까지 관람한다. 같은 실향민으로서 샤갈에게 깊은 공감을 느낀 최인훈, 그의 바람은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최인훈이 새로 시도한 소설 기법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영향 받은 바 많다고 한다. 이처럼 문학의 위안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예술과 책 그리고 작가와 그 시대까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194610월 항쟁에 대해선 그 과정과 함께 관련 문학 작품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꼼꼼하게 기술해 두기도 했다.

 

에두아르 비야르나 샤갈의 그림이 주는 위안은 그림을 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문학의 위안역시 문학을 접하지 않고는 얻을 방법이 없다. 문학의 위안에 언급된 책 이야기들에 공감하며 일부는 다음 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한편, 언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약간의 한숨도 선물 받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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