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미음사 2 / 권미강

톰소여와허크 2021. 1. 1. 09:27

미음사 2

백치 아다다 / 권미강

 

 

느린 햇살 처마 아래 웅크린 오후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읍내 빈 장터를 채운다

초오여어름 산들바아람 고운 보올에 스칠 때

검은 머리 으은비녀에 다홍 치이마 어여뻐라

엄마 18백치 아다다는 장이 서지 않는 날이거나

아버지 쪽잠이 무르익을 때쯤 만날 수 있다

 

소학교 시절, 동네노래자랑 나갔던 노래실력 뽐내며

꼬옻가마에 미소 짓는 말 모옷하는 아다다여어

목청을 쭉 뽑아내신다

차라리 모으를 거슬젊은 날의 그의 해행보옥

백치 아다다는 졸음에서 풀려나

라디오 수리하는 아버지 입가로 이어진다

가아스음에 모옷 박고서 떠어나버린 니임 그리워

엄마 한 소절 부르면 아버지가 따라 부르는 백치 아다다는

벼얼 아래 우울며 새는 검은 누운의 아아아다다아여어

미음사 부부 달달한 금슬처럼

읍내 한 바퀴를 꼭 안고 달린다

 

소리다방, 노마드북스, 2020.

 

 

감상 : ‘백치 아다다’(1935)는 계용묵의 소설 제목이다. 소설 속 아다다는 아다다아 정도의 말밖에 내지 못하는 여성이다. 논 한 섬지기를 얹어서 시집가서 남편과 잘 살다가 남편이 돈을 벌면서 버림을 받는다. 슬픔을 이겨내고 총각 수롱이와 섬에 들어가서 행복을 찾는가 싶었는데 수롱이가 근검절약해서 돈을 모으는 걸 보고 불안해진다. 그 돈을 바다에 던져버린 대가로 아다다는 남편 수롱이의 발길질에 바닷물에 휩쓸려가고 만다.

이 소설은 영화 <백치 아다다>(이강천, 1956), <아다다>(임권택, 1987)로 만들어진다. 1956년 아다다 역의 나애심은 영화 주제가를 불러서 히트시켰는데, 영화 조감독으로 있었던 홍은원이 작사하고 김동진이 곡을 붙인 노래였다. 뒷날 홍은원은 <여판사>(1962)로 우리나라 두 번째 여성 감독에 이름을 올린다. 나애심이 불렀던 노래는 문주란이 리메이크해 호응을 크게 얻었다.

원작의 내용을 줄이자면, ‘돈의 여유를 바라는 사람사랑만이 소중한 사람의 부딪침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랑만을 추구했던 순수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본다.

 

위 시에서 노래 <백치 아다다>를 주고받으며 흥얼거리는 부부의 모습은 원작 분위기와는 반대로 사랑스럽고 평화롭다. 시인의 아버지는 읍내 장터 인근에서 전파사를 운영하면서 라디오 수리를 하는 중에도 배호, 이미자, 은방울 자매의 노래를 전축 스피커로 내보낸다. “노랫소리 흘러나오는 시장통 사람들의 소리다방”(미음사 1)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시인은 점점 잊히어 가는 소리다방(전파사)의 아름다운 소리를 다시 내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이 시집의 몇 편의 시는 소리다방 시절의 풍경과 사람과 정이 묻어나오게끔 하는 리모델링이다. 소리다방의 주인인 아버지, 어머니를 평생 기념하고 간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홍은원은 얄궂은 운명 아래 맑은 순정 보람 없이되었다고 가사를 썼다. 얄궂은 운명의 상당 부분은 세상 물결이 쓰는 것이지만 또 그 이상으로 자신이 쓰는 것이기도 하다. 돈으로 누리고 돈이 사람마음마저 사는 세상, 그럼에도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게 많다고 여기는 사람끼리 만났을 때 불협화음을 줄이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이다. 읍내 한 바퀴를 도는 부부의 금슬도 검은 눈의 아다다여를 위하는 마음이 통해서라고 믿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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