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과 정지 사이 / 이비단모래
마당가서 솔 쳐서
정지로 가져와라
햇싹같은 어린 날
같은 모국어 알아듣지 못해
마당에 나와
운동화 닦던 칫솔 들었다
철 수세미 들었다
허둥대던 모습 보고
웃던
미소처럼
꽃 피었다
어느 한구석
시골집 맏며느리로는 쓰잘 데 없는
여자 하나
아버님 눈빛 피해 보듬으시느라
어머님
더 고달프고
밤이면
배앓이로 하얗던 머리맡
포름한 부추죽 알싸름한
냄새
눈물 빠지게 하던 숱한 날들
배앓이로 뱃속 어느 부품 빼내고
누워있는 며느리 문병한 이튿날
속 터지는 며느리 때문에
숨 막혀 돌아가신
어머님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 죄인
어머님 뿌리로 남은 부추꽃
해마다 피고 지며
내 배 쓰다듬는 손길
-『비단모래』, 문장, 2020.
감상 – 부추는 게으른 자의 음식이라고 한다. 겨울철에 뿌리가 얼지 않는다면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차례 베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뿌리가 얼지 않게 하는 것도, 뿌리를 나누어 수확을 늘리는 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긴 하다.
부추는 몸을 따스하게 하면서도 혈액을 맑게 해주고 기운을 돋우어 주는 성분이 있다. 만병통치약 비스무리하다. 돼지고기나 돼지국밥을 먹을 때 궁합이 맞는 음식으로 새우젓과 함께 부추를 우선 꼽는다.
개인적으론 마늘, 멸치액젓, 고춧가루로 버무린 부추김치를 좋아하지만 부추를 특별한 음식으로 여기진 않았다. 이파리가 날렵하긴 해도 난처럼 기품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고 결정적으로 너무 흔한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자라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다. 꽃이 필 때는 큰 별꽃인 양 꽤 앙증맞다.
위 시의 며느리는 어머니(시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부추꽃의 이미지를 빌려 쓴다. 부추꽃이 환기하는 어머니의 잔상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 시작은 부추와 관련된 특별한 추억이다. 부추는 지역에 따라 정구지, 솔, 졸, 소풀 등으로 불린다. 세상물정 모르는 며느리는 솔이 부추인 줄 모르고, 정지가 부엌인 줄 알지 못한다. 솔 쳐서 정지에 오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시골집 부모 입장에선 일상어도 번역해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모국어도 외국어 같았을 며느리의 답답함도 없는 게 아니다. 다행히 고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싼다.
세월의 흐름 속에 부추는 고부를 다시 한 번 연결한다. 며느리가 배앓이가 심하자 어머니는 부추죽을 끓여준다. 배를 앓아 “속 터지는” 며느리와 그 며느리로 인해 “속 터지는” 시어머니의 연결은 유머러스한 느낌을 주다가 만다. 대신,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그 자리에 뭉클하게 앉는다.
부추꽃은 져도 뿌리는 끝내 살아와 다음 생들을 응원한다. 사람꽃도 똑같이 지겠지만 그 뿌리는 좀 더 오래갈 것이다. 결국 떠날 것은 떠난 대도 그리움은 남고, 그리움은 몸의 온도를 알맞게 데워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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