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告白)에 대하여 / 이태기
고백은 그것을 하는 순간부터
위선이 된다
함부로 고백하지 마라
너는 그 다음을 모른다
너는 그때 몸이 빠져나가버린
허물이 된다
고백하면 너는 이미
네가 아니다
그러므로 고백하고 나서는
바로 죽을 일이다
그럼에도 정히 가슴이 터질 듯하거든
대나무 숲으로 가라
고백하지 마라 고백하지 마라
고(告)하면 하얗게 되리니
그대로 소금기둥이 되리니
ㅡ『탱자꽃』, 빨강머리앤, 2020.
감상 : 마음속의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고백(告白)이다. 백 자가 흰 백자를 쓰는 게 눈에 띈다. 백이 흰 뼈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엄지손톱을 본뜬 것이란 말도 있다. 엄지는 책임 있는 사람의 말의 무게감을 생각나게 한다.
고백이 어려운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마음에 품은 그 말이 곧 그 사람의 뼈대를 이루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는 자산이고, 그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맹이가 한 번의 고백으로 스르르 빠져나가 버린다면 여간 일이 아닐 수 없다.
손창섭의 자전적 소설 ‘신의 희작’(손창섭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긴 하다)엔 고백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성싶은 내용이 더러 있다. 손창섭은 이 소설 이후에 소설과 담을 쌓게 되니 고백의 영향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 품은 말일수록, 또 그 말이 불러올 파장이 크면 클수록 밖으로 내고 싶은 유혹도 강해진다. 소설 속에서나마 본인 이름 석 자를 밝힌 손창섭과 다르게 다수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면서 고백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얼마간의 위선이 생기는 지점이다. 사랑의 고백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고백을 굳이 해야 할 것 같으면, 고백 후 바로 죽을 각오가 됐으면 그렇게 하라고 시인은 친절하게 충고한다.
대나무 숲에 와서도 고백하지 마라, 고백하지 마라는 말이 오히려 고백을 재촉한다. 대나무도 백 년 참았다가 한 말씀 꽃으로 터뜨리고 말라죽는다. 말을 내뱉고 소금기둥으로 서는 일도 피하고 싶지만 정작, 두려운 일은 자기 안에 간직한 말이 밖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또, 자기 말에 책임질 수 있는지의 문제일 듯도 하다. 손창섭이 주춤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는 않을까.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방인 / 보들레르 (0) | 2021.03.04 |
---|---|
노주점 / 김종문 (0) | 2021.01.30 |
실제 / 이육사 (0) | 2021.01.13 |
월광 소나타 / 유진 (0) | 2021.01.07 |
미음사 2 / 권미강 (0) | 2021.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