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

톰소여와허크 2021. 2. 8. 22:52

 

문동만,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 예옥, 2020.

 

문동만 시인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티비 프로그램 자연인이 나오면 좀 지켜보게 된다거나, 술 중에 막걸리를 좋아하고 운동 중에 탁구를 좋아한다는 점도 그렇다. 책을 보내면서 딴 사람 이름을 적어 보낸 것도 닮았다.

시인의 산문집 속 탁구론을 보자면, 제법 짜다는 교회 탁구를 지났으며 중간 공백기를 빼고도 이십여 년 탁구를 해왔으니 만만찮은 구력이다.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 공을 받다가 발이 풀리는 나와는 다른 차원에 들어서 있을 것인데, 고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탁구를 치다 보면 가장 좋은 상대는 끊임없이 받기 힘든 공을 넘기는 사람이다. 실력 있는 상대여서 나의 실력을 높게 해주는 사람이다

 

단순하지만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말이다. 탁구 치는 것이 나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좋은 상대가 되기 위한 맹렬한 연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재미가 따라붙지 않으면 용맹정진할 마음도 동력도 사라지고 만다.

시인의 산문도 출중한 탁구 실력을 닮아 상쾌하게 읽힌다. 현실을 비판하는 어떤 글은 탁구 라켓 하나 들고 승패에 몸을 던지며 도장 격파에 나서는 가열한 느낌도 있지만, 대개의 글은 그런 비판 중에도 주변을 살피고 자기를 가다듬는 내용이다. 자신의 시를 돌아보면서 부조리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있으나 평화의 상태를 동경하고 있었다.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었다고 말한 그대로다.

그런데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은 말처럼 싶지 않은 모양이다. 광화문 비닐집까지 포함해서 두 집 살림하는 송경동 시인과 시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보다는 아름다움을 멍들게 하고 파란 내는 것들에 대한 맞섬이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후 정권이 바뀌었지만 송경동 시인이 비닐집마저 빼앗기고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시인의 마음도 무거울 것이다.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에 대한 지지가 강할수록 이를 방해하고 맞서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분노의 정서로 무장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있겠으나 그럴수록 시인은 자기를 성찰하고 수양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다. 받기 힘든 공을 내가 너에게, 너가 나에게 끊임없이 넘겨주는 진경은 부지런히 연습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경지다.

또한 시인은 간구한다. 시인은 자기 주변의 억울한 죽음이나 안타까운 소멸을 얘기하며 이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라도 선의와 염치가 앞서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삶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끝으로 이 책이 내게 가져다 준 변화 하나도 언급해 두어야겠다. 시인이 소개한 나의 문어 선생님이 아름답고 곡진한 영화라는 평에 혹해, 보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으로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이용을 신청했다. 조만간 계약과 해지의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할 텐데 나의 문어 선생님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 (이동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