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형,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소울앤북, 2021.
- 조재형 시인은 전직 수사관이며 현직 법무사로 일하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인은 이전 시집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에서 “방금/ 노루 한 마리/ 고속도로를 무사히 건넜다”(「속보」 전문)」는 것을 의미 있는 사실로 타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다. “시집 한 권 구입하면/ 단독정부를/ 낱돈으로 이양받은 거사이다”(「광고」 중)라고도 했는데, 이번 산문집에선 “굽이치는 내면의 강에서 범람하는 슬픔을 대신 저장해둘 적절한 집”을 찾는 일을 시집의 기원으로 꼽기도 한다.
이야기 한 대목을 따라가보자. 고향 친구의 아버지가 곰소항 선술집에서 사준 국수, 우연찮게 그 어른이 휴게소에서 사준 자장면의 기막힌 맛을 술술 얘기하던 시인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어른에게 대접할 것을 벼르고 있다가 그만 어른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단다. “마지막까지도 어른은 나에게 베풀고 떠났으나, 나는 끝까지 얻어먹기만 하는 자였다”고 시인은 쓸쓸하게 고백한다.
고소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고, 분노를 해소하려는 방편으로써 고소는 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법무사 시인은 물건 값을 갚지 않았다고 억울하게 공격당하던 노인의 상담을 받는다. 노인은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 그 억울했던 감정을 소송으로 풀고자 찾아온 것이다. 시인은 해에게 달에게 빚지고 사는 이치를 요령껏 먼저 말한다. “오늘처럼 억울한 생각이 들 때 눈을 감아주면 그 빚을 갚는 셈이 아닌가요”며 노인을 설득하는 데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배후에 누가 있다는 느낌을 전한다.
이처럼 시인의 산문은 고향 마을의 추억 등 어릴 때의 경험부터 시작해서 법무사로 일하면서 접한 세상 사연 등을 시인의 말마따나 심심하게 풀어놓았다. 심심한 것은 말을 아껴 쓰는 시인의 기질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고, 또한 심심(深深)한 것은 세상을 읽는 시인의 시선과 그로 인한 정서적 감응의 깊이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한다.
시집을 단독정부라고 말했던 시인이 산문집은 무엇이라고 광고할지 궁금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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