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서촌 오후 4시』, 마음산책, 2015.
- 서울 서촌은 경복궁 서쪽 마을이다. 경복궁 동쪽은 북촌이다. 종로와 청계천의 북쪽이어서 북촌이란다. 서촌은 효자동, 옥인동, 통인동, 필운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은 인왕산 자락에 면해 있고 그 한 자락이 수성동계곡을 지나 옥인동 마을로 내려선다. 수성동계곡은 안평대군의 수성궁(비해당)이 있던 자리고 소설 ‘운영전’의 무대다. 겸재 정선이 그린 수성동 그림 한 점도 있다. 윗자락인 백운동천은 화가 김홍도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며 그 인근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시인 이상의 집은 통인동에 있다.
내가 대충 그리는 서촌 풍경이 이와 같다면, 『서촌 오후 4시』의 저자 김미경은 서촌 옥상이나 길거리에 이젤을 놓고 낚시의자를 깔고 앉아 동네 풍경을 즐겨 그린다. 서촌 홍보만 따진다면 이 지역의 안평대군, 정선, 김홍도 못잖은 셈이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로 통하듯 김미경은 옥상화가로 통하니 꿀릴 것도 없다. 화가는 글쓰는 것을 업으로 했던 전직 기자답게 그림과 관련된 배경 이야기나 삶의 생각들도 함께 전한다.
‘옥상 화가’란 이름도 그러하겠지만 ‘낚시의자’도 김미경 화가를 드러내는 상징 비슷한, 그래서 더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갖게 된 대상인데 저자는 그 덕에 무릎 인대가 늘어나고 통증을 얻게 되었음을 나중에 안다. 낚시의자가 있어야 그림이 잘 된다는 철석같은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이 “온갖 종류의 엉뚱한 낚시의자들을 끌어안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되묻는 시간을 가진다.
한번은 경복궁 영추문 앞에서 인왕산 쪽을 보며 그림 그리다가 보안지역이란 이유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저자는 청와대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민원을 제기한다. 예술 활동을 제재하는 이유와 그 근거가 되는 법적 조항을 묻고, 결국 그림을 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자신의 상식과 주변 상황이 맞지 않을 때, 어정쩡한 수용이나 물러남 대신에 해명을 구하고 일을 타개하려는 에너지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집중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걷는다 Ⅱ>는 그때 그린 그림 중의 하나다. 은행나무와 버즘나무가 나란히 있는 가로수 길 뒤로 ‘메밀꽃 필 무렵’이란 가게 상호가 정답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저자는 어릴 적 읽은 이솝 우화를 인용하며, 길가에 삐져나온 돌멩이가 통행에 불편을 줄 때 그걸 치우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크게 나서지는 못해도 작은 돌멩이를 치우면서 산 것 같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저자의 딸은 엄마를 ‘nothing special’해서 ‘스페셜’한 엄마로 평가한다. 괜찮은 직장이나 현실의 손해를 감수하고 모험을 사는 것,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열심히 행하는 것, 자기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 등등 저자의 남다른 평범은 독자 자신의 평범을 비춰보게 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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