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도시의 기억

톰소여와허크 2021. 8. 5. 21:11

고종석, 도시의 기억, 개마고원, 2008.

 

- 기자 혹은 작가 또는 개인의 자격으로 국외의 도시를 다니며 그때의 경험이나 인상을 적은 글이다. 도시에서 누가 태어났다든지, 태어난 것은 아니더라도 그 도시를 배경으로 누가 이러저러한 활동을 했다든지, 그 누군가를 기념할 만한 일이나 장소는 무엇인지 등등을 살펴보는 재미가 절반이고, 이와 상관없이 그 도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과 사적인 이야기도 나머지 절반이 되는 듯하다. 언급된 도시는 주로 유럽에 치중되어 있고, 일본과 미국 도시도 일부 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저자는 소설가 김사량을 생각한다. 6.25 때 북측 종군기자로 남해까지 내려와 거제와 통영의 바다에 대한 인상을 평양에 타전한 내용을 일부 인용하며, 남해 바다에 대한 김사량의 인상과 자신의 지중해에 대한 그리움을 연결 짓는다. 김사량은 전쟁 중에 사망한다. 말라가에서 지중해를 처음 본 것만으로도 저자는 만족하지만 피카소 생가에선 특별한 감정을 갖지 못한다. 피카소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파리로 가야 한다고 여긴다.

말라가 옆의 세비야를 방문했을 땐, “제네바는 저술가 장 자크 루소와 소쉬르 가문의 여러 학자를 낳음으로써, 엑상프로방스는 화가 세잔을 낳음으로써, 쾨니히스베르크는 철학자 칸트를 낳음으로써, 통영과 정주는 윤이상과 백석을 낳음으로써 문화예술사가 누락시킬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세비야는 다른 방식으로 유명해졌단다. 벨라스케스가 이 도시에 태어났지만 그보다도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의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으로 더 알려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 희곡에 로시니와 모차르트가 곡을 붙이면서 인기 오페라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데 그 배경이 되는 도시가 세비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을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는다. 광장에 이르는 길에 과달키비르강을 보며 이 강을 노래한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를 생각한다. 로르카는 그라나다를 방문했을 때도 다시 언급한다.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행과 함께 말라가에서 세비야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며 그때 봤던 별 하늘의 인상을 “starry starry night”란 노랫말로 줄인다. 빈센트 반 고흐와 고흐를 노래한 돈 매클린을 떠올린 것은 길을 잃었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찾아온 감흥이기도 할 것이다.

베를린 방문에선 윤이상을 인터뷰했던 내용이 나온다.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포기 각서를 쓰고 고국 방문을 하라는 조건부 허용을 윤이상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상해하다가 이듬해 작고한다. 통영은 윤이상 거리와 음악제를 통해 그를 기념하고 있지만 생전의 윤이상에겐 그립기만 한 통영이고, 서운하기만 한 고국이었을 것이다.

도시는 역사와 문화와 지역민들의 삶이 한데 엉겨서 숨 쉬는 공간이다. 도시는 그 도시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그걸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정성에 의해서 매력을 더하게 되는 줄 알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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