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코 떼인 경주 남산

톰소여와허크 2021. 8. 16. 10:00

이하석, 코 떼인 경주 남산, 한티재, 2020.

 

 

- 경주 남산은 여러 골짜기를 품고 있고, 골짜기마다 불상, 마애불, 석탑 또는 그런 조형물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자재들이 흩어져 있는 불국토의 산실이다. 불교 흔적을 떠나서도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지세나 조망이 좋아서 남산을 사랑하는 이가 많다.

이하석 시인의 코 떼인 경주 남산은 남산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골짜기 별로 답사한 기록이다. 남산이 갖고 있는 유형, 무형의 값진 선물을 독자가 좀 더 챙겨갈 수 있게끔 여행안내서 역할도 톡톡히 한다.

시인이 남산 제일의 탑이라고 꼽은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탑의 기품과 주변 풍경이 잘 어울린 곳으로 소개된다. “탑 위쪽 바위에 앉아 보면 탑 너머로 용장골과 은적골, 열반골의 깊이가, 그 위로는 고위산의 강건한 봉우리 선이 하늘에 걸려 있는 광경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고 했는데, 두세 번 이 곳을 다녀갔던 나 역시 비슷한 감동을 느꼈지만 이 책을 읽고 갔으면 주변 공간과 그 가치에 대해서 훨씬 풍성하게 여겼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열반골은 천룡사지로 오르는 골짜기다. 동물 이름을 붙인 숱한 바위들과 똥바위, 할미바위를 지나 고갯마루에 오르는데 그 배경이 되는 설화를 소개하여 흥미를 더한다. 천룡사지가 있는 분지는 동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 가운데 펼쳐진 분지는 6만여 평에 이른다. 명당 중의 명당이라 이르는 것이 틀리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위치가 빼어나다고 했다. 테라스처럼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주어 테라스형 분지라고도 한단다.

새갓골 방면으로만 천룡사지를 몇 차례 찾은 나였기에 다음엔 열반골이나 틈수골로 천룡사지를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숲길을 지나 갑자기 탁 트인 분지를 만났을 때의 감동은 시인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홍길동이나 장길산 부대가 이런 데서 자급자족하면서 활빈을 모색하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했을 것이다.

비파골을 지날 땐 삼국유사 한 대목을 듣는다. 비파암에 살던 거지 중과 효소왕 관련 이야기다. 왕이 우습게 봤던 거지가 진신석가였다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성과 속, 귀함과 천함, 유와 무라는 상대적 차별의식이 기실은 살아가는 이들의 이해와 관습에 의해 규정된는 분별심일 뿐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런 이분법적 구분은 이 세계의 껍데기에 불과한 규정일 뿐 궁극적으로는 없다. 이런 불교적 평등 사고가 이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남산에 가게 되면, 쓸데없는 껍데기 하나 내려놓고 올 일이다. 가방에 이 책을 챙겨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