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만복사미륵불친견기 / 복효근

톰소여와허크 2021. 12. 5. 22:47

만복사미륵불친견기 / 복효근

 

 

내가 사는 남원의 만복사지에는 보물이 여럿 있는데요 그 가운데 불상이 놓여있었다는 석좌가 하나 있지요

 

석불이었는지 금불이었는지 목불이었는지 언제 어느 날 있었는지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는데요 보물이라니오 있었는지도 모르고 불상은 있지도 않은데 희한한 보물도 있지 그저 육각형의 돌덩어리일 뿐인데

 

엄마 손 잡고 산책 나온 듯싶은 아이 하나가 기를 쓰고 올라가 앉으니 하, 거기 문득 생불이

생불이 한 분 계시는 것이었어요

 

왜 저 돌이 보물인지 번뜩 깨달았지요 깔깔 웃으며 장난스럽게 표정을 짓고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이는 저 아이가 567천만 년에 오신다는 미륵부처님이신가 아니라 해도 오신다면 저 모습이겠구나 생각하는데

 

안 된다며 어서 내려오라고 위험하다고 성화를 부리는 엄마나 그동안 보물을 돌덩어리로만 알았던 나는 부처되기엔 일찌감치 글렀다 싶었지요

 

아이가 내려온 자리 새가 한 마리 와서 앉기도 하고 만복사 뒤편 기린산 나무 그림자가 앉아보기도 하고 구름도 바람도 앉아 부처 연습을 하는데요

 

그래서 세상 두두물물이 다 부처 아닌 것 없다는 말씀도 떠올려보며 우두커니 나는 마냥 우두커니 서서 어두워져도 좋았겠지요

 

-『예를 들어 무당거미, 현대시학사, 2021.

 

 

감상 : 남원 만복사지엔 시인의 말마따나 보물이 여럿 있다. 오층석탑, 석조여래입상, 당간지주, 석조대좌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폐사지치고는 절의 부재가 많이 남아 있는 편이지만 그 형태는 자못 이채로운 느낌을 준다. 오층석탑의 일층 몸돌이 다른 몸돌에 비해서 긴 것은 종종 보이긴 하지만 몸돌 받침을 두어 마치 지붕돌이 층을 이룬 듯한 느낌을 주는 건 흔치 않다.

보물에 들지 못했지만 석인상의 존재도 주목을 끈다. 서역장사인지 금강역사인지 아리송하지만 무엇보다 그 몸매가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 묘한 뒤틀림이 있다. 새로 발굴한 얼굴상을 그 몸매에 얹었다는데 위아래 균형미도 부족하고 각도도 어긋나 있다.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을 접하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정다운 인간미를 떠올리게 되는 면도 있다.

남원인 고향인 시인은 지리산 일대의 야생화 이름을 꿰고 있는 눈치더니 이번엔 이동순 시인으로부터 만복사의 도슨트 혹은 매월당의 현신 같다는 얘기를 듣는 걸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지식을 버리면서 이 시를 완성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선택하고 집중하고 퇴고하는 시작(詩作)의 과정을 넘겨짚어 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석조대좌에 대한 보물로서의 가치를 말하지 않는 대신 오히려 돌덩어리로 단순화시켜 놓는다. 부처도 없는 돌 받침에서 어떤 영감도 받을 수 없는 무명씨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돌을 돌로 보는 평범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시를 고민한다면 그 평범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시인에게 평범은 비상한 인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단계다. 돌덩어리 위에 앉아 있는 아이 모습에서 부처를 보고, 그 자리에 잠시 다녀가는 새, 구름, 바람에게 불성을 찾는 시인의 모습은 각성한 수도자 혹은 랭보가 얘기했던 견자(見者)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사진으로 보는 만복사지는 무수한 얘기를 품고 입을 달싹거리고 있는 듯하다. 김시습이 만복사의 양생을 내세워 인간의 사랑과 도리를 연습했듯이 만복사지는 연습하기 좋은 곳으로 보인다. 시인은 만복사지에 와서 부처 연습을 발견하고, 시로 애써 나누었다.

부처 연습 운운하니 옛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서너 살 된 아이를 업고 산을 오를 때였다. 아이가 꼬막손으로 꽃가지를 하나 꺾었을 때 내려오던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꽃을 꺾으면 안 되지!”하다가 놀란 아이 얼굴을 보았는지 아기는 꺾어도 돼!”하며 얼른 말을 바꾸며 거짓말처럼 얼굴을 펴고 웃어주던 장면이다. 꽃을 내어준 꽃나무도, 아이도, 아저씨도 다 부처 연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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