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리, 『단풍객잔』, 소명출판, 2021.
-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생활 주변 이야기에 다문다문 고전을 인용한 것이 묘하게 재미를 준다. 아마도 그 재미는 시인의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을 상황에 맞게 소환해서 삶과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데서 생기는 것일 테다.
집 대문간 뽕나무 한 그루에 대해 말할 땐, 삼십 년 만에 집 밖을 나온 두생이란 분의 일화를 전한다. 두생은 십오 년 전에 딱 한 번 뽕나무 그늘에 든 적이 있었다는 고백을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바깥출입을 삼간 것은 일이 없어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인은 두생 일화를 소개한 이유에 대해서 짐짓 말을 아끼고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방에 의자 하나 놓고 지낸 두생이란 분이 딱하다기보다는 세상의 잣대에 들지 않는 기벽이 삶을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을 흔드는 듯해서 독자인 나도 그냥 좋다.
“달 속 계수나무 꺾어다 추운 사람 땔감으로 가져왔으면 싶네”란 이백의 시는 수혜자가 곧 시혜자가 되는 나무의 생리를 떠올리며 인용한 구절이다. 이웃을 생각하는 목소리에 마음을 기울이기를 당부하면서 “나눔의 문화가 음지를 스치는 한 뼘의 양광이 아니기를” 시인은 바란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뼘의 생색으로 저 할 일 다했다고 스스로를 뿌듯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이백의 시작 계기를 소개하며, “시인은 자신의 입으로 생의 쇠망치를 삼켜 뭇 생명들의 상처를 꿰매는 몇 쌈 바늘로 그것을 정련해 토해내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실제 이웃과 생명을 위하는 시인의 선한 마음은, 네팔 여행 중에도 슬쩍 드러난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다친 아이, 다친 개를 마음 아파하고 어떻게든 도우려고 움직인다. 현재는 집 안팎의 고양이 스무 마리 정도를 돕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유가 있어서 하는 일도 아니며 호구지책에 대한 걱정도 크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저 여린 생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갈바람에 어리버리 휘둘리는 생각들, 살 이유가 뭘까를 하루같이 궁리하는 나도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대번에 찾아지는 것!”이라고 부언한다. 독자로서 단풍 객잔에 즐겨 물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0) | 2022.02.15 |
---|---|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0) | 2022.01.27 |
<에세이>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0) | 2022.01.12 |
<에세이> 디어 마더 (0) | 2022.01.07 |
<그림 에세이>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0) | 2022.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