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톰소여와허크 2022. 1. 27. 06:00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더숲, 2019.

 

 

- 은둔과 명상의 작가. 기인 혹은 괴짜란 인상을 주며 자본주의와 엇박자로 살 것 같으면서도 책으로 수익을 꾸준하게 내면서 시장에서 소외되지 않고 오히려 잘나가는 류시화 시인의 산문이다. 여러 스승과 그들의 훌륭한 말과 문장을 통해 인생에 도움 될 만한 이야기들을 소개해왔던 작가의 행보는 이번 산문에도 이어진다. 특히, 전설처럼 전해오는 작가 개인의 대학생활 모습이 군데군데 인용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방만 세를 얻고 화장실을 쓸 수 없어 볼일을 대학병원 건물에서 해결해야 했던 시절, “카뮈의 실존주의 소설에 반하고 니체의 초인 사상에 심취하고, 바슐라르의 몽상 미학에 밑줄 긋던 이십 대, 오직 문학에 생을 전념하고,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겠다고 혼자 촛불 켜놓고 서약했지만, 현실은 화장실 하나로 나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원래는 배변이 필요 없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행성으로 향해 가던 나였는데…….”라며 고통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류시화는 재치와 넉살로 돌려 말한다. 같은 상황을 두고, 땅에 묻는 매장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씨를 뿌리는 파종으로 여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대학졸업 무렵, 싼 월세를 찾아 종교공동체에 들어갔다가 월세가 남았는데도 쫓겨난 사연, 시험 날짜를 착각해서 언론사 입사가 좌절된 사건도 삼자 입장에서는 유쾌하게 읽힌다. 언론사 가서 정년이라도 했으면 지금의 류시화를 기대하긴 힘들었을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라고 적는다.

티베트 일화에 나오는 수달과 올빼미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람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명문이다. 올빼미에게 수달이 그러한 것처럼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은 전생의 빚이 있어서 그런가 여기며 그 전생의 빚에 집착하는 걸 렌착이라고 부르는데, 작가는 렌착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기준까지 친절하게 소개한다. “관계가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자리하고 있는가? 자기희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와 성장을 가져다주는가?” 살피라는 것이다. 서로의 잣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늘 변화하는 것이지만 유용한 진단법으로 새겨둘 만하다.

작가로서의 존재감은 진실한 한 문장에 대한 애착을 떼고 말하긴 어렵다. 파리 생활을 쓴 날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에서 헤밍웨이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류시화는 이 책이 스물두 살의 자신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행운의 표시로 헤밍웨이가 마로니에 열매와 토끼발 액세서리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얘기도 책에 실려 있는 모양이다. 류시화는 외투 안감에 옷핀을 보는 대로 챙겨서 꽂고 다녔다고 했다. 그럼 나는 내일부터 작은 돌삐 하나라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좋지 않을까 혼자 궁리해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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