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네 집 / 전상렬
한량없이 기쁜 날도 있다.
한량없이 슬픈 날도 있다.
그냥 멍한 날에도
옥이집은 붐빈다.
옥이집은 외상이 통한다.
옥이 엄마는 외상값 때문에 산다.
정다운 얼굴끼리 반갑고
독설과 짭짤한 유우머를 차려놓고
어지러운 세대의 욕지거리 속에
현실을 묻어버린다.
태고에서 물려받은 고함 소리와
한바탕 주정꾼의 표정이
저마다 갈 길을 가고나면
향방(向方)과 옥이 엄마 사이를
고독이 발을 멈추고
대구백화점(大邱百貨店) 문을 닫는다.
-『생선가게』. 상지사, 1977.
감상 : 6,70년대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옥이집은 시내 중앙로 아카데미 극장 맞은편 골목으로 종로까지 못 가서 그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서 있는 듯하다.
옥이집 단골로, 술로 남에게 질 생각이 없는 전상렬이 우선 꼽힌다. 그 다음 ‘독설’과 ‘유머’와 ‘욕지거리’의 주인공이 될 후보들의 면면이 만만찮다. 일본 노래를 곧잘 부르며 심금을 울리는 정석모는 술만 되면 위아래 가리지 않고 독설을 퍼부어서 주위를 긴장케 했다. 막걸리 값과 대구에서 경산까지 가는 차비를 빌리는 것이 그의 버릇이다. 거구의 박훈산도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데 조기섭이 소장한 이중섭 그림을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신동집도 향촌동 술집과 옥이집에서 전상렬 등과 잘 어울려 다녔다. 이수남의 말을 빌리면, 술자리에서 가장 신사다운 이가 유치환이고 그 다음이 신동집이었고 특히 신동집은 유머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옥이집 단골에 도광의도 있다. 도광의는 전상렬의 경상중학교 제자다. 시 쓰고 술 좋아하는 기질의 스승과 제자는 공교롭게 경산 하양 출신이기도 하다. 도광의와 가까운 구활도 하양 출신인데 전상렬이 구활의 고종사촌 형이다.
조향래 기자의 아래 글은 옥이집의 분위기와 해프닝을 잘 보여주기에 옮겨 적는다.
<60년대 중반, 문인예술가들의 단골 막걸리집인 옥이집. 조기섭·전재수 시인과 술을 마시던 권기호 시인이 다소 거친 기질의 전재수를 일찍 보내기 위해 일단 술자리를 파하고 술집을 나왔다.
얼마 후 다시 옥이집에 들어갔는데, 자신을 빼돌리려는 낌새를 알아챈 전재수가 뒤따라 들어오고 말았다. 기분이 상한 전재수의 항변이 시작됐다. "×× 이럴 수가 있능기가?" 욕설과 함께 권기호를 방안으로 밀어 넘어트리기에 이르자, 보다못한 조기섭이 개입했다.
"니는 선배도 없나?" 뒤이어 조기섭과 전재수의 완력다짐이 시작됐다. 그런데 조기섭이 전재수를 업어치기해서 오른팔로 목조르기에 들어갔다. 숨이 막힌 전재수는 순간 조기섭의 오른쪽 가슴을 물어버렸다.
비명과 함께 몸싸움은 그렇게 유혈극으로 끝이 났다.> (‘매일신문’ 발췌)
이처럼 정다운 얼굴끼리 반갑다가도 목소리가 커지고 한바탕 활극이 지나기도 하는 술집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숙진 분위기다. 사회생활도 그러하지만 술자리에선 주종 관계를 고집하는 건 술 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넘는 독설과 욕설까지 견디지 않는다. 술로 인한 실수를 감싸거나 단순한 흠으로 여기고 지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실수를 인정하게 하고 낭패스런 처지로 상대를 몰아가는 경우도 적잖다.
세상이 어떠하든지 간에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술집은 붐빈다. 아무리 왁자글하더라도 술자리는 파하게 되고 사람은 떠나고 결국 혼자 남는다. 그 고독의 시간에 자신과 주변과 세상을 고민하고 아파하고 그 자리에 시가 남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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