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톰소여와허크 2022. 3. 14. 23:27

헤밍웨이(주순애 역), 파리는 날마다 축제, 이숲, 2012.

 

 

- 헤밍웨이 사후 발표된 움직이는 축제(1964)2010년 증보판을 번역한 것으로 오십 대 후반의 헤밍웨이가 1921년에서 1926년까지 이십대 초중반의 파리 생활을 회고하며 쓴 책이다. 파리를 방문한 경험이 없는 번역가는 파리 지도를 옆에 두고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파리를 산책하는 듯한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는 내내 웬만한 여행서보다 파리를 깊이, 풍성하게 느끼는 기회였음을 생각하게 된다.

헤밍웨이와 아내 해들리는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센강으로 산책 나가길 즐긴다. “센 강의 지류 건너편에는 좁은 골목길과 아름답고 오래된 집들이 높이 들어선 생 루이 섬이 있다. 그곳으로 곧바로 가는 길도 있고, 왼쪽으로 돌아서 생 루이 섬 맞은편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시테 섬을 마주 보며 강을 따라서 가는 길도 있다”. 그 강변의 노점 책방에서 헤밍웨이는 인근 호텔 손님이 두고 간 책들을 싼 값에 구입하곤 한다.

헤밍웨이가 제일 반겼던 것은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가 운영하는 셰익스피어 & 컴퍼니서점이다. 책만 좋아하고 돈이 없는 그에게 책을 얼마든지 빌려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첫 날 그가 빌린 책은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도박꾼과 그 외 단편들이다. 헤밍웨이는 서점을 알게 된 것을 대단한 행운이라고 했고, 이 서점은 지금까지 관광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미국에서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파견되면서 시작된 헤밍웨이의 파리 생활. 초기 헤밍웨이는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의 집을 출입한다. 스타인의 집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사교 역할까지 톡톡히 하던 대표적인 문화살롱이었지만 헤밍웨이 눈에 비친 스타인은 모습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며 심술궂은 데가 있다. 에즈라 파운드가 스타인 여사가 내준 의자에 조심성 없이 앉았다가 의자를 부수게 되자 스타인은 화를 감추지 않았고 에즈라 파운드는 스타인으로부터 다시 초대받지 못했다.

헤밍웨이는 에즈라 파운드와 벗하며 그에게 권투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헤밍웨이가 보는 에즈라 파운드는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대해 엄격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러웠다. 에즈라 파운드는 화가 윈담 루이스를 무척 좋아했지만, 헤밍웨이는 그의 못 생긴 얼굴을 반농담조로 희롱하기도 한다. 좋은 그림을 만날 떄면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그림을 재보면서 왔다갔다는 윈담 루이스의 행동을 두고 스타인 여사는 자벌레 같다고 했고 헤밍웨이도 그렇게 인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걸 보면, 스타인이나 헤밍웨이는 지나치게 솔직한 부류의 사람들이란 생각도 든다.

책에서 가장 언급이 많이 된 인물은 스콧 피츠제럴드다. 스콧은 헤밍웨이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런 중에도 헤밍웨이는 당시 우리는 남들 앞에서 옆 사람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그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말을 슬쩍 던져둔다. 주변과 상황에 쉽게 쏠리지 않고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남을 관찰하려는 그런 정신이 그를 특별한 작가로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리옹 여행도 특별하다. 지붕이 없는 차를 가져와서 내리는 비를 다 맞고 건강을 잃은 탓인지 아니면 건강 염려증 때문인지, 같이 마신 백포도주 때문인지 피츠 제럴드는 죽어 가는 시늉을 하고 헤밍웨이는 이를 힘들어한다. 알콜 중독자가 폐렴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으니 피츠 제럴드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스콧은 술이 약해서 아주 조금만 마셔도 취했으므로 그를 알콜 중독자라고 볼 수 없다고 농치기도 한다 . 스콧은 술을 줄이고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스콧의 아내인 젤다의 주량이 스콧을 능가하면서 일이 꼬인다. 스콧이 뒷감당을 하려면 이전보다 술을 더 마시고도 자제력을 잃지 말아야 했기에 결국 글 쓸 시간이 부족했다고 평한다.

정신이 말짱한 그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그럴 때 그는 유쾌하고 농담도 곧잘 했으며 때로는 자조적인 유머를 구사하기도 했다. 그는 술에 취하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만취한 그는 젤다가 그의 글쓰기를 방해하듯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몇 해 동안 계속되었지만,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의 스콧은 더없이 충실한 친구였다며 스콧 피츠제럴드를 회상하는 헤밍웨이에게서 가볍지만은 않은 우정의 무게가 느껴진다.

헤밍웨이는 권투, 스키, 사냥, 경마, 수영, 낚시를 두루 즐기는 에너지 넘치는 작가지만 무엇보다 글쓰기의 힘을 믿고 있다.

나는 글을 쓰려고 세상에 태어났고, 여태까지 글을 써왔으며, 앞으로도 다시 글을 쓸 거야라고 스스로 주문을 왼다. 가난한 파리 시절부터 꿈꿔왔던 모습일 것이다. 마로니에 열매와 토끼발 액세서리도 그 시절 행운의 부적으로 주머니에 늘 가지고 다녔다는데 가을이 오면 마로니에 열매가 어떤지 챙겨봐야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