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자, 『먼 길,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창조와지식, 2021.
- 『나는 B급 작가다』란 시집을 내기도 했던 작가의 산문집. 표제가 된 시를 검색해보니 시를 쓰면 쓸수록 돈이 든다면 B급이란다. 문학 주변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읽힌다. 또 어떻게 보면, 유력 잡지에 청탁 받는 시인은 제한적이고, 원고료까지 받는 시인은 더 드문 걸 보면 세상은 이미 B급이 주류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유명세에 값한다고 부담을 안고 있을 부류보다는 할 말 다하는 B급이 더 낭만적 호칭으로도 들린다.
작가는 서문에서 모든 결핍이 힘이 되었다고 적는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상처와 결핍이 유난하다. 아홉 살 아이가 다리가 불편해서 걷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심코 듣게 된 아버지의 말이 비수가 되어 평생 아버지와 심리적 거리를 두게 된다. 작은오빠의 중학교 입학식에서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던 아픈 기억까지 생각하면 당시의 보편적인 남아선호 사상에다 애정 표현이 서툴렀던 아버지 상이 떠오른다. 작가는 풍물놀이 상쇠로 신명을 내던 아버지의 모습, 그런 예술적 감흥을 자신이 물려받았음을 인정하고, 아버지도 딸이 쓴 시를 소리 내어 읽기도 하면서 거리감을 좁히는 시간들이 없지 않았으나 작가는 아홉 살의 기억을 생전의 아버지에게 끝내 꺼내지 못하고 그런 상처로부터 이만큼 성장해온 자아를 스스로 다독여준다.
작가는 독서 지도를 업으로 하면서 늦깎이 학교 공부까지 더하며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독서 학원에 형편이 닿지 않아 그만두려는 아이를 끝까지 챙겨서 그 덕에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된 어머니가 감사 표시로 건강 검진을 도와준 얘기도 눈에 띈다. 거짓말처럼 몸 안의 병을 일찍 발견해서 치료하게 된 사연은 소설 같은 현실 이야기다. 작가가 겪은 결핍감이 상대의 결핍을 읽어주는 바탕이 되고 기꺼이 남을 도와주려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 밥을 살 수 있고, 책을 마음대로 사 보는 것, 가끔 여행을 가며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었다. 이만하면 부자가 아닌가?”라 말대로 이미 작가는 큰 부자다.
산문의 뒷부분은 독서 경험을 풀어놓은 이야기다. 작가는 보따리 장사 이력도 있고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틈틈이 책을 읽어서 간부나 동료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때 위로가 되었던 책이 『갈매기의 꿈』이다. 갈매기 조나단처럼 먹이를 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 길을 내며 의미 있는 삶을 향해 날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점점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말에 밑줄을 그으면서, 작가의 고향인 청도의 어느 당산나무 아래에서 혼자 울고 있는 소녀를 생각해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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