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고향집 앞에서

톰소여와허크 2022. 3. 6. 11:08

구활, 고향집 앞에서, 눈빛, 2005.

 

- 구활 작가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출신으로 전직 신문기자이면서 수필가다. 고향집 앞에서란 수필집엔 고향 하양과 관련된 추억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추억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과 혼자서 다섯 남매를 키운 어머니 이야기가 거듭 등장한다. 달걀을 품고 있다가 쥐에게 가슴살을 뜯기고 안짱다리가 되었음에도 병아리를 챙기는 암탉의 처지를 어머니는 자신과 동일시한다. 암탉에게 말을 건네고 먹이를 주며 기특하게 생각한다. 작가 역시 암탉 일가의 모습을 가난과 외로움에 떨어야 하는 어머니가 이끌어야 하는 우리 가족들의 투영도로 여기지만 그 암탉의 최후는 자식들의 몸 보신이었고, 작가는 남은 병아리를 생각하며 입맛을 잃는다.

하양은 능금이 유명했었다. 과수원집에 또래들과 같이 초대되어 갔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혼자 쫓겨나오다시피 했던 기억을 작가는 잊지 못한다.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의 한으로 시장에 들를 때면 국광 사과를 꼭 찾는다. 어느 산막 아궁이에 능금나무로 불쏘시개를 했을 때의 장관도 상당하다고 했다. 파란색과 보라색 등 오만 가지 색으로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을 감상할 수 있다며 능금나무 장작을 얻으러 다닐 궁리를 한다.

인물과 관련된 몇몇 장면도 흥미롭다. 작가는 구상 시인과 김홍곤 교수, 또 같은 하양 출신이면서 고촌사촌형이기도 전상렬 시인을 은사로 여기며 따른다. 동년배 김원일 소설가와 도광의 시인과도 가깝다.

구상 시인은 이중섭이 그린 <구상 가족>(1955)을 말년에 처분해서 그 돈 일억을 이웃에 기부한다. 구상이 떠나고 난 뒤 딸로부터 작가는 구상의 모자를 유품으로 받는다.

김원일, 윤지홍과는 술 마시다가 밤길 육십 리를 대여섯 시간 걸어서 작가의 하양 집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김원일은 이때의 기억과 어머니가 해준 밥상을 잊지 못했는지 작가의 첫 수필집 발문에 관련 내용을 적는다.

작가는 동향의 도광의도 시 잘 쓰는 친구로 존중한다. 고향 금호강에 투망질 갔을 때 시인은 정확해야 한다며 도광의는 잡은 고기를 낱낱이 세며 즉석에서 시를 쓰고는 액자를 만들어 주기로 하고 아직 소식이 없단다. 문의 마을에 가서란 시집을 빌려가서 또한 소식이 없고 영영 돌려받지 못할 것 같다는 우정어린 농담도 해두었다.

전상렬 시인에 대해선 시도 팔할, 술도 팔할이라고 소개한다. 그 집에 하숙하고 있을 때, 전상렬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오는 길에 자전거를 몇 번이나 쓰러뜨리고 귀가한다. 그 자전거를 수습하는 일을 작가는 또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월광수변공원 시비에 있는 전상렬의 시 고목과 강물을 읽으며 구할이 술일지도 모를 작가는 눈시울을 적신다.

 

문화유적 답사 기행을 끝낼 무렵 작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없는 고향집이지만 그곳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달빛 이불을 덮고, 벽에 천상병의 시인의 귀천을 족자로 걸어두고 지켜볼 요량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지내고 있는지 살짝 궁금해진다. 안방에 걸어두었다는, 댓잎을 스쳐 지나는 바람소리가 들린다는 죽농 서동균의 <풍죽>도 아직 무사한지.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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