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예수 / 유성운
보따리 서너 개 메고 오 남매 주렁 달고
마가리 화전민으로 쫓겨 온 일도 억울한데
마흔 나이에 덜컥 또, 뭘 먹여 키우라고
어매는 너덜겅 밭에 상소리 꽤나 뱉었다지요
호밋자루 뗑강 분지르고 돌밭을 구르며
아기씨 떼어 낸다고 시악을 부리기도 하고
빨랫방망이 내던지며 양잿물 퍼마시고
같이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한 날은
손이 곱고 눈물도 꽁꽁 언 겨울이었다지요
엄마는 내가 배 속에서 9개월이 될 때까지
산 넘고 넘어 예배당을 다녔는데요
죄송스럽게도 그 은혜로 세상에 태어났죠
기어 다닐 때부터 온종일 혼자 놀았어요
나는 방치되고 다들 마음은 콩밭에 있었죠
울다 지쳐 냇가까지 굴러가서 물을 마시며
울수록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울음을 포기한 세월만큼 강인해졌지만요
어지러운 시대 불운한 지식인 아버지는
혼돈에 적응 못 해 화전민으로 추락했지만
아이들에게 글과 노래를 열심히 가르쳤죠
일곱 살 되던 해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엄마는 처음 아버지 생신상을 차렸어요
흰쌀밥 한 그릇, 붉은 고등어 한 토막
강냉이와 감자로 연명해 온 칠 년 동안
꿈도 꾸지 못할 천상의 음식이었어요
엄마는 모두 상 근처도 못 오게 했어요
설핏 눈물짓던 아버지는 수저를 들다 말고
나를 안아 들고 하얀 쌀밥 한 수저에
고등어 살점 올려 내 입에 먼저 넣어 주셨죠
씹을 것도 없이 스르르 녹는 암브로시아
처음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이었죠
예배당에서는 보이지 않던 그 예수님을요
보혈이 엉긴 붉은 살점을 얹은 한 술 예수
입에서 가슴으로 녹아들던
그
하얀 예수
-『꽃피듯 우는 사람』, 좋은땅, 2022.
감상 – 유성운은 전국을 돌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이다. 왠지 음유시인은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감성을 파고드는 면이 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유성운의 목소리는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 만큼 관객의 귀를 파고드는 힘이 넘친다. 서정과 박력을 동시에 갖춘 쟁쟁한 가수라는 생각이다. 그 서정의 바탕을 이번 시집이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얀 예수’는 시인의 성장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는 서사적 요소도 다분하다. 시인의 탄생은 축복의 분위기는커녕 그 시작 단계부터 아슬아슬해 보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는 깊은 산골을 선택해 들어왔고, 어머니는 원망스런 마음을 감추지 않고 식구가 받아들여야 할 화전민의 삶을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중에도 삶은 살아야 한다. 아버지는 돌밭을 일구는 중에도 남매를 가르치고, 어머니도 밭일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늦둥이의 울음에 보듬어줄 여유는 없었을 것이고 아이도 일찍 울음을 그치는 지혜를 갖춘다. 뒷날 아이가 목청을 틔우는 가수가 된 것은 그때 못 울은 울음을 실컷 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이에게 잊지 못할 장면 하나는 산에 들어온 지 일고여덟 해만에 어머니가 원망하는 마음의 빗장을 푼 것인지 아버지 생일상을 낸 것이다. 아버지는 눈물까지 훔치며 생일밥 첫 술에 고기를 얹어 아이에게 먼저 내민다. 이때를 회상하던 시인은 예배당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하얀 예수를 처음 대면한 날로 기록한다. 하얀 쌀밥이 곧 예수다. 예수는 자연이 사람에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내미는 사랑과 감사에 들어있다는 말로 듣는다. 시인은 예배당의 조각물 대신 남에게 내놓은 김치를 「붉은 예수」로 보는 시각을 가졌고, “거리의 예수 고단한 예수 그 깡마른 예수”(「거리의 예수」)만을 진짜로 친다.
시인의 이름에 든 유성은 별똥이기도 하고, 성운은 별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행운유수로 다니며 스스로 빛을 내는 팔자인 셈이다. 시인은 어딘가를 지나고 더러 머물기도 하면서,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칠 것인데 그 자리에 마가리의 별빛도, 밥그릇의 쌀빛도 반짝반짝 흐르고 있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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