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 천지경
밤늦은 시각 대폿집을 파장한 아줌마 셋
시든 배추 같은 몸을 일으켜 배드민턴을 친다
노동에 찌든 몸은 운동으로 풀어야 하지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체력을 길러야 혀
다부진 몸매의 전주 댁이 내리 꽂히는 콕을 쳐 올린다
물살로 출렁거리는 밀양 댁은
한 번 쳐 올릴 때마다 방귀의 힘을 빌린다
가장 높이 떴을 때 몸을 낮추는 셔틀콕
엉덩이부터 내려야 날개를 다치지 않는다는 진리를
일찍부터 깨달은 영은 엄마는
베트남서 아버지 같은 남자한테 시집 온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아직 젊은 돌배기 엄마
힘이 너무 들어가면 어깨 너머로 달아나버리고
팔이 약하면 맥없이 툭 떨어지는 하루하루
술만 들어가면 괴팍함을 부리는 손님처럼
치는 대로 순응하다 어느 순간 까탈을 부리는 셔틀콕
이 바닥서 돈 벌려면 독해져야 혀
구멍 숭숭 뚫린 몸으로도 잘 받아 쳐내야만
자식 셋 공부시킬 수 있지
전주 댁 팡, 쳐낸 셔틀콕이 밤하늘로 날아간다
행패 부리는 단골 주정꾼 내쫓을 속셈으로
깨뜨린 맥주병의 파편 같은 별들 향해
-『울음 바이러스』, 불교문예, 2020.
감상 - “부처님은 가장 큰 공덕이 /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공양하는 거라 했다. / 장례식장 조리사인 나는 / 하루 수백, 수천 명 문상객의 밥을 짓는다.”
시집 첫머리에 나온 ‘시인의 말’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밥 짓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시인인 만큼 그 공덕이 상위 1프로에 너끈히 들 만하되 시인은 “어떠한 마음으로 밥을 짓느냐”가 중요하다”며 따뜻한 마음이 더 있어야 할 것을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시인의 말대로 마음이 따라와 주지 않는 공덕 값을 후하게 매길 순 없겠지만 「배드민턴」과 같은 시편들을 읽을 것 같으면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의 온도를 바로 직감할 수 있다. 배드민턴 치는 아줌마 셋은 대폿집에서 안주도 내고 술 응대도 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에게 배드민턴은 여기(餘技)로 하는 취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체력을 길러야 혀”라는 말 그대로 약해진 팔이나 구멍 숭숭 뚫린 몸에 최소한의 근력을 붙이려는 자구책에 가깝다.
늦은 밤까지 일하는 육체적 피로보다 더 힘든 것은, 도가 넘는 손님들의 과격하고 부적절한 언행까지 감당하며 정신적 외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맥주병까지 깨뜨려 보이는 살벌한 연기도 마다하지 않아야 견딜 수 있는 자리다.
장례식장 조리사인 시인은 몸을 쓰면서 살림하는 여성들을 편견 없이 보면서 그들의 노동을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다. 시인의 의도가 있다면, 배드민턴과 결부지어 이 바닥의 고단한 노동 그 자체의 가치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방귀의 힘으로 셔틀콕을 쳐올리는 여성에게서 유머를 잃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의 모습을 읽게 되지만, 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노동한 만큼 대우를 받고, 노동 후 여유 있게 운동하고 충분히 쉴 수 있는 근로 환경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시인은 밥으로 공덕을 쌓고, 시를 빌려 그걸 형상화하고 있다. 그 근간에 따뜻한 밥을 나누려는 마음이 좋게 읽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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