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스무 색깔 스무 느낌』, 상상나무, 2007.
- 신문기자 시절, 작가는 여행 코너를 맡아 전국을 부지런히 다녔다. 이 책은 발품 팔아 다닌 곳 중에서 경상도 여행지를 답사하고 소개한 책이다. 예천 회룡포, 안동 봉정사, 청송 절골, 합천 황매산, 경상북도 수목원과 기청산 식물원, 통영과 연화도 등 소개된 여행지는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비교적 분잡하지 않은 곳이다. 물질과 자본의 침투를 살짝 비켜 있으면서 자연 속에서 인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책이 출간된 지 십오 년 되었고 그간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관련 여행지를 이해하는 데 당시와 현재의 시차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작가가 안내해준 여행지는 이전 날 내가 즐겨 다녔던 공간과 꽤 일치한다. 작가는 여행지에 꼭 알고 갔으면 하는 내용을 적으면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책에 실을 수 있게끔 고심했다고 하는데 아는 얘기는 아는 대로 모르는 얘기는 모르는 대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작가가 가족과 세 번이나 들렀다는 연화도에선 연화봉에 이르는 두 갈래 길과 그 곳에서 용머리를 바라보았을 때의 절경에 대해서 얘기한다. 해발 215m의 연화봉이지만 그 공간에서도 길을 잃어 작가의 요구대로 하지 못한 불운한 나는 연화도에 다시 갈 이유가 생겼다.
내가 아직 못 가 본 울릉도에 대해선, 단체 여행의 야단스러움을 피해서 옛길 트레킹이 조용해서 좋단다. “옛길은 섬 일주도로가 개설되기 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였다. 학교를 오가기 위해, 산나물을 팔기 위해 넘나들던 삶의 길이었다”며 이 길을 걸었을 때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말해준다. 좀 더 길어도 좋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여행자가 채워야 할 몫일 게다.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작가가 소개해준 포항·영덕의 노거수 중 포항의 노거수 세 어른을 만나러 갔다. 기계면 문성리 팽나무, 신광면 사정리 팽나무, 신광면 마북리 느티나무다. 작가가 길을 헤맸던 것처럼 나 역시 사정리 팽나무를 동네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동네에서 빠져나오면서 어렵게 만났다. 마북리 느티나무는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고 갔다가 돌아나오면서도 또 지나치고 말았다. 다른 마을까지 멀리 갔다가 다시 물어물어 겨우 만났을 때, 그 노거수의 눈에 내가 잡히고 내 눈에 노거수가 들면서 안녕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작가가 책에서 말해준 그대로, 옆에 동행이 있어 좋았고 노거수를 동행할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여행이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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