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 2

톰소여와허크 2022. 8. 31. 21:42

 

박일환,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 2, 한티재, 2022.

 

 

- 박일환 시인이 영화를 읽었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시가 인용되거나 영화 스토리 전개에 시가 개입하는 영화들이다. 시인은 국어대사전의 잘못된 표제어나 용례를 귀신처럼 찾아내고 꼼꼼하게 고증해서 세상에 내놓은, 공부하는 학자이기도 한데 영화 읽기도 그만큼 내용이 깊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 안의 시를 다루는 것이니 영화 줄거리 소개나 서사 흐름을 좇아가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포가 될 여지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보다는 놓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게끔 해준다.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 영화 속 긴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의 연출 의도를 차례차례 짚어주는 시인만의 안목이 책에 배여 있고, 그걸 영화로 직접 확인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내가 제일 먼저 찾아본 영화는 <호우시절>(허진호, 2009)이다. 우연찮게 중국 청두의 두보 초당에서 재회한 동하와 메이. 동하는 메이가 어떤 아픔을 갖고 사는지 헤아리지 못한 상태에서 메이와의 사랑을 이어보려고 하지만 또 어긋나게 된다. 다행히 어긋난 이유를 깨닫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박일환 시인은 귀국 장면에서 메이가 선물로 내준 시집이 어떤 의미인지, 꼼꼼하게 파고들어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놓는다.

 

출장을 마친 동하가 떠나는 날, 메이는 공항으로 찾아와 원문과 영역본으로 된 두보의 시집을 선물로 건넨다. 시집 제목이 영어로 ‘Good rain on a Spring Night’라고 되어 있다. 김성곤 교수가 말했던, 춘야희우(春夜喜雨)를 영어로 옮긴 제목이다. 이제 두보의 시를 볼 차례다.

 

春夜喜雨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이하 6구 생략

 

첫 구절에 나오는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에서 영화 제목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금관성(金官城)은 청두의 다른 이름이다. 옛날 청두에 견직물을 다루는 관원을 두었기 때문에 비단 금()자가 들어간 이름을 붙였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김성곤 교수는 중국문학 전공자로 박일환 시인이 즐겨보는 세계테마기행한시 기행편에 나와서 한시를 읊으며 그곳 풍물을 소개한 바 있다. 김성곤 교수도 그러하겠지만 영화감독도, 주연 배우도, 책을 쓴 시인도, 그리고 영화나 책의 독자도 두보와 두보의 시에 나름의 연결고리를 갖고 영상을 만들거나 보고, 책을 쓰거나 읽게 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한때 시인을 꿈꾸다가 그간 시를 잊고 지냈던 동우는 메이를 만난 저녁에, 시 한 줄을 썼다가 지운다. 박일환 시인은 그 한 줄의 의미도 놓치지 않는다. 귀국한 동우가 메이에게 보낸 짧은 편지 구절도 한 편의 시로 받아들이던 박일환 시인은 <호우시절><언어의 정원>(신카이 마코토, 2013)과 견주기도 한다. 이런 영화를 고전에 가까운 영화로 여기면서도 시인은 고전과 고전문학의 의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선 지금 여기 있는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하고 재해석해 볼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밝힌다.

<언어의 정원>을 다음 볼 영화로 점찍어 둔다. <변산>(이준익, 2018), <달팽이의 별>(이승준, 2011) 등등 영상으로 만나고 싶은 작품이 생겼다.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은 한국 영화를,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2는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2에는 <패터슨>, 흐르는 강물처럼등이 보이는데 어떤 시 이야기가 영화에 숨겨져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