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임, 『과일과 한시 이야기』, 종이와나무, 2018.
- 저자는 중국 사범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교수로 일한다. 한국의 고전에 해박하며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두루 아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데 이런 평은 『과일과 한시 이야기』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과일에 담긴 사연과 문화를 소개하며 한시에 등장하는 과일 이야기까지 보태어 일상 속에 접하는 과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을 쌓게 한다.
다래에 대한 소개를 보자면, “다래는, 봄에 갓 올라온 야들야들한 연둣빛 순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다래순 나물은 소박하지만 봄의 향기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근사하다. 봄에 채취해서 말렸다가 묵나물로 밥상에 올리면 또 다른 별미이고 품격 있는 반찬이 된다.”고 했다. 다래가 갈증 해소에 좋다는데 매실, 살구, 참외, 홍시 등 웬만한 과일은 모두 기갈에 좋다고 되어 있긴 하다. 다들 가난하던 시절, 목을 축이면서도 최소한의 영양가를 제공하는 물기를 과일이 간직하고 있어서 그럴 것도 같다.
다래를 소재로 한 인용 한시 중 장유의 시를 보면,
시렁에 넝쿨 올라간 지 몇 년도 안 되어
아니 벌써 푸른 다래 주렁주렁 달렸나요
씹어 먹으니 달콤하고 시원하여 병든 폐 소생할 듯
신선에게 선도 복숭아 구할 필요 없겠어요.
「장주의 숙부께서 미후도를 보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그 시에 차운하다」, 『계곡집』
蒼藤成架幾多年 翠實驚看纍纍懸 창등성가기다년 취실경간유유현
嚼罷甘寒蘇病肺 蟠桃何必問群仙 작파감한소병폐 반도하필문군선
- 「奉謝長洲叔餉獼猴桃次韻」, 『谿谷集』 봉사장주숙향미후도차운
황해도 장주(장연)에 사는 숙부가 다래(미후도-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이란 의미)를 보내왔다. 글쓴이 장유는 폐가 좋지 않았나 보다. 근대의 작가들 중 나도향, 김유정, 이상, 현진건, 이육사 등 폐를 앓은 문인들의 수가 적잖다. 폐를 앓은 조카에게 효험이 있다는 다래를 숙부가 보내온 것처럼 이들 작가들에게도 쾌유를 바라는 주변의 노력이 있었을 것인데 어떤 처방이 있었는지 누군가 공부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소개한 한시 중에는 주고받은 물건이나 마음을 부제로 밝혀 놓은 것이 많다. 정경세 「속리산의 정장로가 새해가 되어 시를 부치면서 대추 한 봉지도 같이 보내왔기에 그 시에 차운하여 감사하다」, 이색 「정월성이 참외를 보내주어 감사하며」 , 이응희 「인척의 아우 민자진이 청포도를 주다」에서 보듯 감사한 일들에 대해서 시로 기념해 두는 것이다. “씹어보니 혀에서 파도가 이는 걸 깨닫겠네”며 과일 맛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시구는 「맛 좋은 배를 부쳐 준 이 촌로에게 사례하며」 쓴 서거정의 시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저자는 “옛적 시인들은 이렇듯 상대방의 호의를 한 편의 글로 혹은 한 편의 시를 지어 사례하였다. ‘고맙습니다’, 혹은 ‘감사합니다’라는 짤막한 한 마디로 그 마음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사유와 표현방식과 비교하면, 참으로 고아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마음을 다해 사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때로 말보다 글이 주는 무게감과 절실함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며 좋게 평한다.
아래의 『월사집』에 실렸다는 이정구 한시 「석양공자가 때 이른 홍시를 보내왔기에 편지 끝에 적어서 사례하다」 도 비슷한 경우라 하겠다. 숙취에 갈증이 심한데 때마침 보내준 홍시를 시원하게 먹었다며 감사를 전하면서도 마지막 2구에서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직접 사람이 찾아온 것보다 홍시가 더 요긴하고 반가웠다는 것이다. 짓궂으면서도 기분 좋게 웃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정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전략)
정녕 고마운 벗님이여
찾아와준 것보다 더욱 기쁘구려
丁寧故人惠 不啻足音跫 정녕고인혜 불시족음공
『과일과 한시 이야기』를 읽으며 포도 몇 알을 먹었다. 자신이 먹는 과일에 대해 얼마쯤 아는 게 과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도 살짝 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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