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 『남중』, Human & Books, 2019.
- “작가 자신을 일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자신의 체험이나 심경을 고백하는 형태로 표현하는 소설”을 사소설(私小說)이라 한다. 하응백 작가의 연작소설 『남중(南中)』도 일인칭 화자에 의해 글이 서술되고 서술자의 경험과 진술에 거짓의 느낌이 없기에 사소설에 가깝다.
또한 「김벽선 여사의 한평생」과 그 짝이 되는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은 전(傳)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라고 해도 되겠다. 전(傳)은 인물의 특기할 만한 행적을 바탕으로 인물의 출생과 성장 배경, 인물에 대한 비평이나 상찬을 곁들인 것으로 여기에 그럴듯한 서사까지 더하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사소설 혹은 전기소설은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따르다 보니 소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라는 설정에서 벗어나 있다. 허구와 상상의 폭을 제한하는 면이 있는 만큼 이를 상쇄하거나 뛰어넘는 개성이나 문장력으로 또 다른 소설적 재미를 부여하는 게 관건이란 생각이다.
그런 작품으로 이문구의 『박용래 약전』이나 『유자소전』,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 등이 떠오른다. 성석제의 경우, 조동관은 실제 모델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해 창조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문구의 경우, 박용래는 가까이 벗하며 지낸 시인이고 유자는 자신의 실제 친구다.
『남중』의 김벽선 여사와 하 영감 스토리는 하응백 작가의 실제 부모를 모델로 했으니 허구가 개입할 가능성이 이문구, 성석제의 경우보다 더 낮다. 그럼에도 내용은 퍽 흥미롭다.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눙치는 글 솜씨가 작용한 점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를 잡아서 기록해 놓으려는 진심이 이 소설의 진짜 힘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간단히 요약할 수 없는 두 인물의 생이지만 두 분이 만나는 지점을 짚어본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의 목재상 하 영감은 우연찮게 대구 서문시장에서 완구점과 싸전으로 부를 축적한다. 남편 전사 후 대구 원대동 사글셋방에 있던 김벽선 여사는 바느질한 옷감을 서문시장 옷감 가게에 내주다가 하 영감을 만나 아들을 얻는다. 이 소설을 쓰고 있는 하 작가다. 선산 여자 김벽선은 고령 여자와 한바탕 결전을 치른 끝에 아들을 하 씨 집안에 이름을 올리고, 달성동에 모자가 살 집도 장만한다. 하 영감은 고령 여자와 함께 봉덕동 집에 주로 머무르지만, 아들에게 해인사와 낙산사의 추억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들은 낙산해수욕장에서 하 영감에게 남이 잘하지 않는 수영법도 배운다. 훗날 바다와 낚시에 사로잡힌 하 작가의 이력이 떠올려지는 장면이다.
하 작가는 김벽선 여사가 전몰장병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유공자 가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억울병을 풀 수 있도록 도우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부끄럽지 않는 삶의 모습을 조금은 따스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기록해 둔다. 이어지는 「남중」에서 블랙리스트 사건과 연루되어 자존을 지키지 못하고 민망해하는 인물과 묘하게 대조되는 면이 있기에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남중(南中)이 사전적 의미 외에도, 일직선으로 닿거나 깨치는 ‘통쾌한 어떤 순간’과 연결되는 것임을 엿보면서 나에게 남중은 무엇일지 또 어떤 장면으로 지났을지 생각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우럭, 광어, 참돔 등의 자연산 회를 낚시로 잡아 가져다드렸다”는 책의 한 구절을 만났을 때 어딘가를 관통하고 뭔가에 적중되는 기분이 쓱 온 것도 같지만 그건 남중의 발견이 아니라 불효의 자각에 가까운 것일 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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