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벙어리뻐꾸기 / 문무학

톰소여와허크 2022. 10. 25. 03:46

벙어리뻐꾸기 / 문무학

 

그렇다 차라리 기침 같은 네 울음을

고향 지킨 재종숙의 어눌한 훈계처럼

무안한 얼굴빛으로 대꾸없이 듣나니.

 

길 잘든 목젖으로도 토해 내지 못하는

골 깊은 원시림의 싱싱한 그 바람으로

한 천 년 세상 거슬러 네가 그리 울어야지.

 

잃고도 영 모르고 모르며 또 잃어가는

무엇인가 뉘 소중한 소중한 그 무엇인가

네 거친 울음 속에서 깨어나고 있나니.

 

설사 슬픔이거나 절망이더라도, 백상, 1989.

 

감상 : 뻐꾸기는 영미권에서는 cuckoo [ˈkʊkuː]로 쓰고 발음한다. 새소리가 새 이름이 된 경우다. 뻐꾸기도 마찬가지다. 뻐꾹 뻐국 하는 새소리가 새 이름이 되었다. 똑같은 새소리라 하더라도 언어권마다 새소리를 다르게 적는 건 언어의 자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기도 하다.

뻐꾸기 말고도 검은등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가 있다. 셋은 모양새도 다르지만 수컷이 내는 소리로도 구별이 된다. 검은등뻐꾸기는 홀딱벗고새로 불린다. 새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로 들린다고 하고, 실제 새소리를 들으면 공감되는 면이 커서 그런지 여러 시인들이 이를 자신의 시로 차용하면서 별칭이 생긴 것이다. 물론, 듣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들리는데 내 귀엔 작작 먹고로 들려서 메모한 적이 있다.

시인이 노래한 벙어리뻐꾸기(oriental cuckoo) 또한 소리가 다르다. 소리를 내고 있는데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했으니 좋은 명명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 하는 새소리가 벙어리가 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이름을 붙였을 개연성이 높다. 벙어리는 사전에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되어 있고 실제 속담 사례에서 이런 면이 다분히 있어 보인다. 애초에 벙어리란 단어는 높고 낮음에 대한 인식 없이, 말이 트여 나오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적 명칭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벙어리란 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낮잡아 생각하고 말하는 그릇된 인식에 근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쯤해서 시를 보자. 벙어리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집 가까운 숲이나 산에서 --”, “--”, “--” 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인과 벙어리뻐꾸기와의 교감이 시작된다. 울음소리를 예사로이 지나지 못하는 것은 시인의 운명과도 같다. 벙어리뻐꾸기 소리는 점점 누군가의 울음과 연결된다. 누군가의 울음이 벙어리뻐꾸기의 그것과 동일시되는 느낌도 있다. 그 울음은 검은등뻐꾸기처럼 길 잘든 목청에서 나오는 낭창한 소리는 아니다. 기침을 놓는 것 같은 소리는, 고향 바깥으로 잘나가지 못하는 이의 답답함이 묻어 있다.

그런 중에 울음이 회한이나 부정으로 흐르지 않고 골 깊은 원시림의 싱싱한 그 바람까지 태워서 유장하게, 마땅히 그리 울어야 한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굴곡진 세월 속에서도 생을 긍정하며 자존을 잃지 않고 살아온 민초를 응원하는 함의도 있어 보인다.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꿈도 벙어리뻐꾸기 울음이 돕고 있다. 이런 울음이라면 좀 거칠고 사나워도 좋을 것이다. 연필로 힘주어 --” 눌러쓴 글씨처럼.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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