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 조문환
조선희 선생이 다녀가셨다
생전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나라는데
날 보면 동생이 잡힐 것 같다고 하면서
우두커니 그 말만 하고서는 한동안 쳐다만 보셨는데
내 얼굴에 동생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을 리 만무한데
단 한 번 아침 식사 자리에서 동생을 뵈었을 뿐인데
얼마나 그 마음 잡을 길 없었으면
단 한 번 밥 자리에서 만난 나를 보러 오셨을까?
내 눈망울에 동생 그림자라도 남아 있어
그 걸음 헛되지 말아야 할 텐데
떠난 뒷모습에
오히려 동생의 모습이 서려있는데
- 『시위를 당기다』, 학이사, 2022.
감상 – 흔히 인용하는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첫 번째는 ‘부모구존 형제무고(父母俱存 兄弟無故)’다. 부모형제가 안녕하고 그로 인해 가정과 일신이 평화로운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에 안도할 수는 있어도 호기롭게 자랑하는 건 어색해 보인다. 부모형제 무고하지 않은 이웃의 사정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즐거움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는 길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피와 정을 나눈 형제도 순서 없이 이별하여 슬픔을 안겨준다. 아우의 죽음을 제재로 한 시가 꽤 되겠지만 기억나는 몇 편을 옮겨 본다. 김종삼은 아우의 죽음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장편」에서 “아우는 스물 두 살 때 결핵으로 죽었다./ 나는 그때부터 술꾼이 되었다”고 했다. 박목월은 「하관」에서 동생을 땅에 묻으며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송수권은 여동생의 죽음 이후 「산문에 기대어」에서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라며 동생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종암은 「사천왕사 터」에서 “동생, 너 죽어 석삼 년 나는 폐허다”라고 했다.
조문환 시인은 피붙이 동생의 죽음이 아니라, 단 한 번 밥 먹은 게 전부인 어찌 보면 데면데면할 수 있는 사람의 부고를 통해 동기간의 더할 수 없는 정(情)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죽은 동생을 저편으로 바로 보내지 못하고 약간의 기억이라도 더하며 이승의 연을 환기하려는 형의 헛짓이 오히려 짠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감동은 형의 그러한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화자의 태도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형에게서 동생을 보고, 동생에게서 형을 보고, 이웃에게서 자신을 보고, 자신을 보는 이웃을 헤아리고 하는 마음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별에 온 다음에야 이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이 주는 슬픔과 허무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떠난 사람의 “흔적”을 좇는 거라면 거꾸로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갈 건가도 삶의 평생 과제인 듯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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