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 도경회
녹내장에 걸린 저수지
살얼음 반 너머 깔린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따뜻한 운석
얼음에 쩡 금이 간다
밤 깊을수록 하늘 팽팽해지고
풍덩 풍 잔 메아리 일구며
돌 떨어지는 소리 잦다
물이 가슴 뚫리면서
너울에 솔개바람 인다
목숨의 둘레를 돌려가며
갑옷 구멍처럼 홀쳐서 찢어지지 않게 깁고 있다
무리를 이끄느라 피멍 든 죽지
세상 후미진 밑바닥 훑어서
밥 벌어오던 아버지
-『데카브리스트의 편지』, 우리시움, 2022.
감상 – 24절기 중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은 마지막에 놓이며 이름에서 보듯 가장 추운 날에 해당한다. 북쪽의 작은 저수지라면 꽝꽝 얼 때가 많지만 남녘의 저수지도 영하의 날씨에 살얼음 끼는 건 종종 보게 되는 일이다.
살얼음은 그리 단단한 얼음은 못 되는 것인데 운석이 자꾸 부딪쳐 오니 그 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가슴 뚫리면서” 구멍을 내준다고 했다. 상처를 치유하듯 그 뚫린 가슴을 기워 주는 것은 뜻밖에 바람이다. 너덜해진 저수지 혹은 깨진 살얼음에 바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자리에 시인은 아버지 모습을 본다. 가족 건사와 밥벌이로 고단해진 가장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녹내장에 걸린 저수지”란 첫 구절도 아버지를 염두에 둔 표현이겠다. 녹내장은 눈을 보호하는 액체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안압이 높아지면서 시력 저하가 야기되는 병이다. ‘살얼음이 낀 저수지’나 ‘눈이 흐려진 아버지 모습’이 유관한 듯 무관한 듯 놓여 있으니 결국 이 시를 읽은 독자의 마음에 따라 유정하게 머물기도 할 것이고 무정스레 지나기도 할 것이다.
얼마간의 고생은 불가피한 일인지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평생을 소한 추위 속을 걸어가는 사람에겐 그다지 요긴한 속담이 아니다. 차라리 외투 한 벌, 양말 한 짝 준비해서 얼어붙은 가슴에 톡톡 노크하는 게 나을 성싶지만 무정한 세월은 그런 기회마저 공평하게 주지 않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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