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핀셋과 물고기

톰소여와허크 2023. 8. 13. 00:05

문서정, 『핀셋과 물고기』, 도서출판 강, 2023.
- 여덟 편의 단편이 모인 소설집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상당수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또는 자신이 한 일에 비해서 훨씬 과중하거나 아주 부당하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한 처지에 몰린 인물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게 하고 같이 아파하면서 종국에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여덟 편 중 <우리는 손가락을 모르지>도 글을 읽고 난 뒤의 여운이 오래간다. 생선장수로 오남매를 키운 어머니. 늦게 얻어서 인생이 꼬이기만 하던 막내 외에는 어머니를 자주 찾지 못한다.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임종한다. 장례를 치른 뒤 세 자매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이상 증세를 똑같이 느낀 걸 알게 된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간지럽고 시린 통증을 동반하면서 티눈 같은 것이 점점 커지는 증세다. 육손이었던 어머니와의 관련이 의심된다. 육손이의 유전 여부를 따지는 과학 지식이 무용한 걸 알면서도 세 자매는 긴장감을 갖는다.
세 자매는 큰오빠와 막내 동생의 엄지손가락을 보기 위해서 함께 움직인다. 가장 여유롭게 살면서도 어머니를 멀리 했던 큰오빠는 아예 엄지손가락에 붕대를 한 상태다. 예상되는 그림처럼 막내 동생은 엄지손가락에 어떤 표시도 없었다. 여기에 소설의 반전과 또 한 번의 반전이 숨겨져 있다. 막내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는 큰언니는 독자와는 다른 이유로 막내 동생에게 증세가 없을 거라고 여기는 눈치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에 시큰거리는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막내의 말에 충격을 받고 동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된다.
정황 설명이나 묘사로 짧게 지나지만 오남매에겐 각자의 인생고가 있고 그로 인해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나 부의금 나누는 방식에도 나름 예민해져 있다. 독자는 오남매 중 누군가와 겹친다거나 아니면 누구와 누구의 중간이거나 하는 자리를 정해 놓고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할 것이다. 주인공 ‘나’는 통증 끝에 엄지손가락에서 나뭇가지가 자라고 잎사귀가 피는 걸 보고 만다. 우산을 하나 더 들고 있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무치는 순간이다.
“잎사귀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가 피어올랐다. 엄마, 엄마……얇은 눈꺼풀 속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는 문구에서 문득,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으로 시작되는 시 한 편이 나는 떠오른다. 문서정의 『핀셋과 물고기』에서 박재삼의 「추억에서」로 이어지는 서사와 서정의 시간, 그 사이로 태풍 카눈이 비린내를 훅 끼치며 북상 중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