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사람이 사는 미술관

톰소여와허크 2023. 10. 23. 22:05

박민경, 사람이 사는 미술관, 그래도봄, 2023.

 

-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책 표지에 나온 글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소속으로 인권 교육을 담당했던 저자가 들려주는 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주된 내용이며, 그림은 이야기의 실마리 혹은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소싯적 달력 명화를 보면서 그림에 빠져들었던 경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의 그림을 실제 보면서 설렜던 감정 등 그림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전공인 인권을 만나서 저자 스스로 흥을 내면서 글을 썼다는 인상을 받는다. 난해한 이론이나 단순한 지식 나열을 피하고 삶과 결부된 인권의 여러 측면과 그 의미까지 쉽게 풀어쓴 것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등의 목차에 따라 소개된 그림 중에, 오노레 도미에는 두 번이나 등장하는 영예를 안았지만 서운하게도 <블루스타킹>(1844)은 자랑이 되지 못한다. 석판화 그림인 <블루스타킹>은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이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면서 동시에 집안일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부정적으로 그린 풍자화라고 할 수 있다. 오노레 도미에는 민심과 동떨어진 왕과 정치인을 풍자한 그림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진보적 인물이지만 여성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지금 입장에선 큰 흠이 될 일이지만 저자는 그 당시의 보편적 남성 시각이 어떠한 것인가를 충분히 존중해준다. 그러기에 인권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로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개된 오노레 도미에의 또 다른 작품은 <봉기>(1848). 저자는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봉기>를 견준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나타난 카리스마 넘치는 여신의 모습 대신 <봉기>의 전면에 선 고생스럽고 초췌한 모습의 여성에서 더 큰 울림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는 봉기의 중심에 뛰어든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며, “봉기 현장에 나서기 전까지 그녀는 망설였을지도 모릅니다. ‘나 하나 현장에 더 나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어?’ 하지만 그녀는 끝내 봉기 대열에 합류하고, 도미에의 그림 속 주인공으로 남았습니다.”라고 했다. 가족에 헌신하며 열악한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떨쳐일어난 것에 대해서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저자의 마음이 읽힌다.

사람이 사는 미술관이란 책 제목은 여러 선택지를 두고 저자의 아들이 정해준 것이라 한다. 저자는 제목에 만족해하는 눈치다.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인권 감수성 넘치는 사회가 될 때,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라는 서문 한 대목이 제목과 내용을 꿰뚫고 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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