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강가의 아틀리에

톰소여와허크 2023. 11. 22. 00:42

 

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열화당, 2017(초판 1975, 중판 1986)

 

- 장욱진 화가(19171990)의 회고전이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2024.2.12.)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초창기 작품부터 250여점이 전시되어 볼거리가 많다는 입소문이 돈다. 전시회 날짜를 확인하며 강가의 아틀리에를 읽는 시간을 갖는다.

언제적 교과서에서였을까. 그의 <자화상>(1951)을 한참 본 기억이 있다. 노란 보리밭을 지나 고향집(충남 연기)으로 돌아오는 사내는 검은 정장에 검은 가방과 검은 우산을 든 모습이다. 장욱진이 알고 있지는 못했겠지만 몽마르트에 온 에릭 사티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긴 했다.

장욱진은 피란 시절의 혼란 속에서 불안과 초조가 자기를 감쌀 때 이곳 고향에서 시험지와 말라버린 물감 몇 개로 미친 듯이 <자화상>, <나루터>, <장날> 등을 그렸다고 했다. <자화상>에서 전쟁의 흔적이나 느낌을 발견하긴 어렵다. 구름은 평화롭고 까치의 비행도 평화롭다. 화가 자신과 강아지만 몸이 다소 말랐을 뿐이다. 대신, 보리밭 사잇길 전면에 선 사내 앞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막연한 기대와 끼어드는 불안이 서로 교차되는 느낌이다.

이로부터 스무 해 더 지나서 장욱진은 <자화상>(1973)을 그린다. 이전 자화상에 비해 배경도 사라지고 없고 색채도 최소화되었다. 평소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는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에,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라고 즐겨 외던 화가의 말이 <자화상>(1973)에서 들리는 듯하다. 자화상의 눈, , , , 다리가 단순화되어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인상도 준다. 인물의 좌우에 달()과 새를 두면서 자신이 의지하고 동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준다.

강가의 아틀리에표지화로 사용된 <자화상>(1975)은 목이 긴 얼굴상인데 얼핏 이중섭 화가의 얼굴과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비슷한 또래이고 가족을 소재로 다수의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책에 관련 언급은 없지만 둘만의 어떤 교류나 영향이 있지는 않았을까 의문을 남겨둔다.

 

장욱진의 그림엔 새도 자주 등장한다. 스스로를 까치 잘 그리는 화가로 소개하기도 한다. 뉴욕 한국현대회화전에 출품된 <나무와 새>(1957)는 큰 나무 속에서 아이가 놀고 있는 그림이다. 마을과 해와 달도 큰 나무에 얹혀 마치 무동 타듯이 어울려 있다. 그림 속 새는 나무에 깃든 정도가 아니라 큰 나무와 동격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자연이 생명을 돕고, 생명이 자연을 품고 사는 생태 공동체의 이상이 장욱진 화가의 그림에서 자주 발견된다. 화가는 별로 꾸미지도 않고 생각나는 대로그린 무계획적인 그림이었다고 말한다. 애초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화가의 지나온 삶과 축적된 생각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림의 방향성을 만드는 것일 테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림을 그리는 데 다 소모하고, 휴식으로 술을 마시고 싶다던 바람대로 장욱진은 그림과 술로 삶을 소비해버린 작가다.

몸에 좋다는 일은 절대로 안 한다. 평생 동안을 자기 몸만 돌보다가는 아무 일도 못 하고 말 게 아닌가 말이다. 술에 안주가 뒤따르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술 마시는 것도 황송하기 짝이 없는데 안주는 어떻게 먹는다 말인가.”라는 고백을 대하면 안주발 세우는 위인으로선 범접하기 어렵거나 범접하고 싶지 않은 경지에 화가가 있었다고 하겠다.

장욱진 화가는 여행을 마음의 먼지 털어내기로 생각했다. 덕소와 수안보의 작업실에 보낸 시간도 그에겐 여행이었다. 화가는 귀환할 수 없는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의 기록일 수도 있는 그림이 남았다. 어느 그림 앞에선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을 사랑한다.”고 했던 화가의 육성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