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역사소설> 연산의 아들, 이황

톰소여와허크 2024. 3. 19. 21:34

 
 
강기희, 『연산의 아들, 이황(김팔발의 난)』, 달아실, 2020.
강기희 작가는 오지 마을인 정선 덕산기 계곡에 숲속 책방을 열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강기희 작가로서는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이며 여기에 아내인 유진아 동화작가가 뜻을 같이해 준 것이다. 텔레비전으로도 몇 번 소개되어 강기희 작가의 소설책 한 권 읽고 가본다는 게 때를 놓쳤다. 작가는 지난여름 유명을 달리했다.
『연산의 아들, 이황(김팔발의 난)』은 『연산』(화남출판사, 2012)을 복간한 것이다. 연산은 광해와 함께 왕으로 재임했으나 실권 이후 끝내 복권되지 못한 왕이다. 그나마 광해는 임진왜란에서의 역할, 실리 외교 등에서 점수를 얻어 상당 부분 재평가가 이루어진 반면에 연산은 폭군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배경엔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사림파 숙청이란 피바람을 불러온 두 번의 사건이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두 사건에 대한 태도는 보류한 채 핵심 반정공신들의 처지로 반란의 의도를 읽어낸다. 박원종은 경기관찰사에서 한직인 지중추부사로 발령 난 상태였고, 성희안은 이조참판 및 오위도총부 도총관 자리에서 종9품 부사용으로 미끄럼을 탄 상태였다. 그러니 이 반정은 민중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 권력의 교체와 신하 권력의 공고화에 가깝다는 작가의 판단이 깔려 있다.
박원종, 성희안 주도의 반란에 수많은 신하들이 참여하게 된 이유도 따져볼 문제다. 물론, 실제 연산의 폭정 때문일 개연성도 높지만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토지와 노비 제도를 개혁하여 왕권 강화와 서민의 더 나은 삶을 도모하려 한 것에 대한 신하의 반발이 컸다고 여긴다.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반정에 대한 평가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반란군에게 추대되어 임금이 된 중종의 재위 기간이 무려 38년이나 되는 상황에서, 성희안이 실록 작성 책임자가 되니 그가 간여한 ‘연산군일기’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작가 입장이고 그것이 곧 색다른 역사소설의 출발점이 되었을 줄 안다.
여기에 폐세자 이황이 정선으로 유배를 떠나고 얼마 후 사사되었다는 이야기도 작가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황을 복위시키려는 김팔발의 난은 정선 지역의 취적옥에 얽힌 설화가 그 뿌리로 보인다. 난을 일으킨 장본인은 노비 출신 장사인 김팔발이지만 소설로 확대된 이상 구체성을 갖기 위해 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이 묘사되고, 반란군에 가담하는 세력도 다양해진다. 작가는 은둔 양반과 향교의 훈도, 부보상과 포수의 무리들, 노비들을 다함께 반란군에 참여시킨다. 이들이 내건 기치는 평등세상이라고 했다. 자신이 새로 모시고자 하는 주군에게도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을 약속받으면서 또 한 번 세상을 뒤집을 준비를 하는 것인데 작가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 연합군은 토벌군을 이기지 못한다. 내부 반란자도 나온다. 알고 보니 노비 출신 대장을 비웃으며 신분의 구별은 당연하다는 자기신념에 갇힌 사람이다. 다들 한목소리를 낼 때 그 파급력은 엄청나겠지만 언제든 갈라지는 지점이 생기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은 자기 목소리를 내며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을 읽으니, 빨리 가는 용맹보다 진정성을 담으려는 질문과 고민이 더 귀한 듯도 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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