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도시독법

톰소여와허크 2024. 9. 14. 22:27

로버트 파우저, 도시독법, 혜화1117, 2024.

 

저자의 고향은 미시간 대학이 있는 앤아버다. 저자는 앤아버를 사랑하는 마음과 벗어나고픈 충동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얼핏 후자의 동력이 강해서 저자를 도쿄, 서울, 대전, 교토, 더블린,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주거를 옮겨 살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연 있는 도시를 사랑하는 전자의 힘도 상당한 수준 그 이상이다. 하나하나의 도시를 깊이 느끼고 길을 걷고 그 도시의 속과 징후를 살펴서 책을 내는 것으로 도시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앤아버를 떠나 있는 동안 점차 보수화된 도시가 권력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에 저자는 못마땅해 한다. 그런 중에 2018년 앤아버는 중요한 결정 하나를 내린다. 시 소유 주차장 부지를 주상복합 건물로 재단장할 것인가 시민 공원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시 의회에서 주상복합 건물로 거의 결정 난 것을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시민 투표에 부치게 되고 녹지가 있는 공원으로 남게 된다. 공공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갖고 치열한 논쟁을 한 결과이고 저자는 이를 앤아버다운 결정이라고 내심 뿌듯해 한다.

 

저자는 앤아버를 떠난 게 변방에서 어딘가 있을 중심을 찾아간 것으로 젊은 날에 그리 이해했지만, 이제 그 변방과 중심은 자기 안에 있다는 걸 안다고 했다. 그러는 중에 저자는 놀랍게도, 10개 남짓의 외국어를 익힌 언어학자로 살았고 그런 바탕 위에 여러 도시를 경험하고 기록하는 아주 특별한 도시 산책자가 되어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많은 도시들이 인구 감소와 경제 쇠퇴에 직면하고 있음도 걱정한다. 도심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나 도시 재생 사업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중에도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책에서 자주 언급한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과 꿈을 안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다시 떠나야 하는 현상과 곳곳에서 일률적으로 벌어지는 무분별한 재개발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런 고민 속에 개발과 보존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저자는 유럽의 일부 도시가 먼저 걸었던 길에서 찾는다.

저자는 부산 서쪽 지역의 가능성을 주목하며 그들(유럽의 일부 도시)은 소규모 신축 개발을 통해 오래된 역사적 경관을 지키면서 동시에 도시의 기능을 업데이트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도시의 기본 인프라에 투자하면서 필요에 따라 신축과 보존을 병행했다. 신축 건물 중심의 개발을 진행할 때도 규모 자체를 키우지 않고, 보존을 진행할 때도 역시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했다. 그 결과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와 개성, 자연 경관 등을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경제 활동이 가능한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며 한국에선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 마을이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저자의 도시 탐구 내용 중 그가 즐거운 기분으로 머물렀다는, 가고 싶다는 장소성을 획득한 서점에 대해서 메모해둔다.

1. 도쿄 진보초 책방 거리의 잇세도(一誠堂) 서점: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로 된 책이 있음.

2. 대전 문경서점과 책방 다다르다: 문경서점에서 충남대 친구를 사귀며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읽음. 지금은 폐간된 잡지 샘이 깊은 물을 애독함.

3. 교토 고미술품 골목의 ‘Books & Things’(미술과 건축 관련 책이 많음)과 교토대학생협 서점

4. 전주 전라감영 인근의 책방 카프카와 잘익은언어들

5. 뉴욕 뉴욕 공립도서관과 헌책방 더 스트랜드: 스타벅스의 공습을 피해서 갈 수 있는 곳

6.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아벨서점: 보물창고 같은 곳

 

대강 메모했지만 메모와 상관없이 각자의 지역에서 그런 장소성을 가진 책방이나 공간을 찾는 게 필요한 줄 안다.

저자에게 앤아버와 교토와 라스베이거스는 어머니와 함께했던 공간이라서 더 특별하다.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철학의 길을 혼자 걷다가 옛날의 벤치를 반기며 모든 것이 쉽게 변하고 흔들리는 이 불안한 시대에 이렇게 제모습을 잘 지켜나가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살고 싶은 도시는? 저자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런 도시를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