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숙, 『암태도』, 창비, 1981.
- 소설 배경은 지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맺어진 소작권에 대한 개선 운동이 일어나던 1920년대 초반이다. 조선총독부가 토지 조사 후 소작농이 가졌던 권리(경작권, 도지권)을 빼앗아서 지주에게 귀속시키면서 소작농은 더욱 을의 지위로 떨어졌다. 또 이전에 반반 부담하던 소작료를 지주가 7,8할 이상 받아가는 구조까지 되어가니 농민들도 더는 참을 수 없었겠다. 암태도의 서태석 등 뜻 있는 농민지도자가 등장하고 전국적으로 소작회가 만들어지면서 지주와 지주의 뒤를 봐주는 관에 목소리를 내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도 영향을 주었다.
암태도 소작인들의 요구는 실제 고생스럽게 일한 농민들이 살 수 있게끔 소작료를 4할 이하로 낮추자는 게 주된 요구였다. 문씨 지주는 이를 거절했고 이어 두 세력 간의 갈등이 폭행 사건으로 이어지자 서태석 등 주로 소작인 쪽에서만 13인이 구속된다. 여기에 암태도 주민 육칠백 명이 두 번이나 배를 띄워 목포 검찰청 앞으로 나가서 항쟁하게 된다. 굶주림 속의 가열한 투쟁이 마침내 여론의 호응을 입고 결국 구속자 석방과 소작료 인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얻게 되었고 이후 균형적 소작 관계 마련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실제 사건이 이러하니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도 흥미롭다. 작가 송기숙은 특유의 언변으로 우리말을 풍성하게 살려 문장을 썼다. 소설에선 실질적 지도자인 서태석, 박복영 외에도 춘보, 만석이 같은 소작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춘보 내외는 동학 운동을 벌인 과거를 숨기며 섬에 살고, 사당패 출신 만석이도 의병 활동을 하다가 신변 위협을 느끼며 아내와 함께 섬에 들었다. 이러한 사실 혹은 설정은 암태도 소작쟁의를 동학농민전쟁과 의병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보려는 작가 시각과 관계된다.
소작쟁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모기도 천이 모이면 천둥소리를 낸다고 하잖던가요.”라는 말에서 짐작이 된다. 소설 속 서동오의 말이지만 서태석의 말이기도 하고, 소작인 한 명 한 명의 뜻이기도 하고,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 말미는 잡혀 갔던 소작 위원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단고리 보통학교(현, 암태 초등학교)에서 잔치 준비를 하는 중에 멀리서 남일환 배가 들어오는 장면이다. 풍물소리를 듣는 중에 만석이는 슬픈 진양조 한 가락을 뽑는다. 왜 그런지는 소설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
남일환에 대해선 김훈, 박내부가 번갈아 가면서 쓴 『문학기행』(1987)에 보충 내용이 나온다. “남일환이란 이름은 남쪽 바다에서 제일가는 연락선이라는 뜻인데, 그 당시의 서남 도서 지방 주민들이 푼돈을 모아 구입해서 자치적으로 운영했던 연락선(동력선)이었다. 남일환은 돛단배가 아니라 동력선이라는 점만으로도 섬사람들의 자존심의 상징이었으며 흑산도에서 출항해서 서남 바다의 모든 섬들을 한 항로로 꿰매 목포항에 닿는 그 연락선에 의하여 섬사람들은 섬의 숙명적인 고절(孤絶)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 암태도를 오가는 배에 남일환 이름표가 계승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암태도 여행 시 소작쟁의 기념비에 들르는 것은 필수다. 기념비 내용은 『암태도』를 쓴 송기숙 작가가 직접 쓴 명문이다. 암태도 소작쟁의를 ‘소작인 스스로 인간답게 살려는 역사적 성취의 발걸음’으로 평하며 이 위대한 항쟁 정신을 담은 탑이 활화산으로 빛날 것이라고 기념비에 적었다. 기념비 안쪽 마을 언덕에 위치한 암태 초등학교에서도 기념비가 그림 형태로 숨어있으니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암태도 여행 시 꼭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소작쟁의 기념관 겸 서용선 미술관이다. 원래 미곡 창고였던 것이 농협창고로 바뀌었다가 2023년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창고 내외의 벽에 소작쟁의 과정을 그림 연작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이 인상적으로 와 닿는다. 벽화를 그린 서용선 화가는 역사화와 인물화에 능한 걸로 알려져 있다. 시대정신이 담긴 것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즐겨 표현해왔던 작가이기도 하다. 화가에 대한 궁금증은 박병대 시인이 쓴 『더불어 호흡하는 화가 서용선』(불교문예, 2024)을 참고하면 좋겠다. 양평 문호리에 작업실이 있는 화가는 이곳 암태도까지 승용차로 오가며 일 년 이상 벽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박병대 시인은 작업 장면 하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서용선은 안전수칙 입간판에 자신의 사진을 부착하고 안경에 사 할이라고 적었다. 암태도 농민들이 지주에게 소작쟁의 투쟁으로 요구한 소작료 사 할을 서용선도 세월을 건너뛰어 암태도 농민과 한마음으로 힘을 실었다. 벽화로 그리는 역사의 무게를 짊어진 그의 체력이 이제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있음을 감지하였다”고 적었다. 인용 글대로 ‘사 할’은 서로의 목표치인데 번뜩 드는 생각이 있어 메모해 둔다. 어쩜, 암태도의 ‘사 할’은 죽기 살기로 덤벼야 풀리는 ‘사활’의 문제가 아니었는가 하는...(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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