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과 가는 길 / 이명윤
복도를 걷는데 등 뒤에서
달그락달그락 운다
구두 뒷굽의 구멍이 돌을 삼킨 것
노인이 걸음을 뗄 때마다 어느 날
구두를 찾아온 슬픔이 말을 거는 것이다
이 건물엔 복지과가 없다는 말은
도무지 들은 체 않고 달그락달그락,
풀 한 포기 없는 복도를 따라오며
연신 중얼중얼거린다
먼 나라 어느 부족의 주문 같은
중얼중얼,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선가 노인의 가슴이 삼킨 돌들이
정신없이 말을 거는 것이다
달그락달그락 쯤이야 거꾸로 뒤집어
탁탁 치고 그래도 안 되면
쿠폰 한 장으로 조용할 수 있겠지만
중얼중얼은 어떻게 하지
달그락달그락, 중얼중얼,
말을 탄 노인이
쉬지 않고 황야를 달린다
분명 이 세계 어디엔가
태양처럼 떠 있을,
복지과를 찾아서
-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2024.
감상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엔 형제, 2008)는 영화는 제목만 보면 노인 복지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뜻밖에 스릴러물에 가깝다. 영화 속 킬러는 노인이든 누구든 존중하지 않으며 특별한 동기도 없이 상대에게 위해를 가한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늙은 보안관도 공허한 독백과 미간의 주름만 지을 뿐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서 영화 제목에 일조한다.
사실, 농경 위주의 전통사회에서 노인이 누리던 위상이나 권위는 산업 위주의 근대사회를 지나며 기초연금 등 여러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이나 권위가 축소된 느낌이 있다.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지혜를 구하며 노인 그 자체로서 대우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싶은 것이다. 오히려 노령 인구와 그 기간이 함께 늘어나는 사회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되어있지 못한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겪어가는 중이다. 그런 중에도 노인은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말할 권리가 있고, 미래의 노인인 젊은이도 그 권리에 마냥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위 시에서 노인은 지방의 주민센터 등 관공서를 찾아온 분으로 이해된다. 복지과를 찾는 것으로 보아 복지 관련 민원이 있었을 텐데 문제는 해당 관공서에 복지과가 없다는 것이다. 노인은 직원의 말에 아랑곳없이 복지과를 찾는다. 복도를 달그락달그락 움직이는 노인의 모습에서 석양의 무법자 같은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시인이 짐짓 가장하는 낭만 혹은 농담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지만 낭만과 농담이 아니라 그 안에 내밀하게 흐르는 뜨뜻한 전류까지 감지했다면 시인의 진의를 만난 것일 테다.
그 진의는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슬픔이 말을 거는 것”으로 듣고, 중얼중얼 소리를 “노인의 가슴이 삼킨 돌들이/ 정신없이 말을 거는 것”으로 알아듣는 데서 나온다. 노인의 “중얼중얼”을 웃거나 무시하지 않고, “어떻게 하지”하는 연민과 안타까움 속에 노인을 긍정하고 노인의 현실을 더 나은 쪽에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읽히는 것이다.
노인이 암만 복지를 찾아 헤매도 복지과가 없는 이상 당장의 복지 민원은 해결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시를 읽으며, 노인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없는 복지과’가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를 위한 나라든 노인을 위한 나라든 각각을 위한 주문이 많겠지만 어디든, 어느 세대든 복지가 깊이 스미지 않고서는 안 될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인정사정없는 킬러가 무섭지만 또한 불쌍하다는 생각도 뒤늦게 든다. 혹여, 복지가 삶의 태양으로 떠서 이웃을 고루 비추었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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