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밤 그네

톰소여와허크 2024. 10. 25. 00:26

 

하명희, 밤 그네, 교유서가, 2024.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민기 자작곡, <아름다운 사람>

 

단편 다정의 순간에 인용된 김민기 노래의 일부다. 처마 밑에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물끄러미 보며 그 울음을 오래오래 듣는 것이 곧 다정한 마음이겠다. 소설 밤 그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처마 밑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닮았다. 작가 하명희는 그 울음을 다 듣고 울음의 사연을 살펴서 울음을 다독이는 영매의 역할도 십분 해낸다.

오랜 생활 응어리진 마음들을 찬찬히 응시하며 섬세한 언어로 풀어 환한 울음으로 흘려보낸다.”는 책 뒤의 소개말 그대로다. ‘울음에 굳이 수식어를 써서 환한 울음으로 표현한 것은 울음이 어둡고 습한 데 머물게 하지 않고 밝은 햇살 아래 반짝이게끔 하는 것과 관련이 될 것이다. 소개말의 주인공은 퇴촌 베짱이 도서관 관장 박소영이다.

퇴촌 도서관은 다정의 순간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던 김동수 씨가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과정을 보며, 김홍모 만화가는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2021)를 쓰게 되고 퇴촌 도서관 식구들은 이를 기념하여 북토크를 기획한다. 이는 소설 상황이면서도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소설 다정의 순간주인공은 두 자매다. 동생에게 온 사촌오빠의 소포로 인해 언니는 옛날의 상처를 환기하게 되고 동생은 동생대로 실업급여를 신청하며 분주하다. 그런 중에 두 자매는 전에 없이 여행을 작정하고 실행한다. 그 여행의 주요 행로 혹은 목적지에 퇴촌 도서관이 있으니 소설과 실제가 절묘하게 만나는 셈이다. 여행지로 도서관을 선택한 것에서 작가의 평소 취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오래된 서점에서에서 언급한, 시시한 연애의 상대는 잊어 버려도 오랫동안 들락거릴 수 있는 정류장 같은 서점은 잃고 싶지 않다는 문장도 생각나는 대목이다.

퇴촌 도서관 북토크 끝에 김동수 씨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언니는 눈물을 쏟아낸다. 그런 언니를 보며 우는 것이 용기라는 생각과 함께 동생도 눈물을 낸다. 언니와 동생의 울음은 모든 상처는 서로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표제작인 밤 그네는 이태원 압사 사고로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다룬 작품이고, 마산행은 부마항쟁 시 자장면 배달하다가 끌려간 열다섯 아이가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먼 곳으로 보내는는 우정으로 뭉친 사총사 중 한 명의 부고가 뜨면서 소설이 시작되는데 울고 웃는 파장이 깊어서 책을 덮고도 바로 책을 뜨지 못하게 한다.

노래 속 처마 밑에 한 아이는 커서 김민기 같은 가수도 되고, 하명희 같은 소설가도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사람>을 틀어 들어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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