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레드빈 케이크』, 도서출판 강, 2024.
-작가의 ‘자전적 소설’ 양식을 취한 ‘소설’이다. 자서전이라 하지 않고 소설이라 한 것은 인과의 요소가 좀 더 긴밀하게 작용하고 우연의 요소가 좀 더 흥미진진하게 섞이도록 허구와 과장이 요소요소 가미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와 실제에 가미된 허구가 눈에 잡히는 경우는 흥미가 반감되는 면이 있는데 『레드빈 케이크』는 그 경계를 의식할 사이도 없어 인물의 성장 스토리에 푹 빠져 읽게 된다.
소설 속 ‘나’는 작가의 분신이다. ‘나’의 가족사는 근대사의 그늘을 드리운 남북 분단의 질곡과 직접 닿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을 이뤄 이북의 해주와 평양에서 생활을 하다가 남쪽을 선택해 피난을 감행하고 그때 부모와 첫아들을 두고 내려온 것이 평생의 한이 된다. ‘나’는 피난지 제주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는 ‘나’가 판박이로 닮았다는 외삼촌이 낙동강 전투에서 죽은 이야기나 그립기만 한 대동강의 추억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제주 생활 10년 후 부모가 선택해 온 도시는 대구 토성(달성공원 일대) 인근이다.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제 작가의 『레드빈 케이크』도 대구와 이곳 토성을 배경으로 한 주요 소설에 꼽힐 것이다.
부모가 토성 앞 적산가옥 행랑채를 얻어 장사를 시작할 무렵, 이곳은 “지금 번개시장이 열리는 쪽으로는 하천 복개가 되지 있지 않았다. 마치 고성(古城) 주변의 해자(垓字)처럼 하수도를 겸한 얕은 개천이 토성 주위를 흐르고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그 개천에 빠져 죽을 고비도 넘긴다.
한때 공원상회란 간판을 내고 가게가 성업을 이룰 때는 토성 안에 출장소까지 차리며 돈을 버는 시절이 있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 ‘나’는 형과 함께 가게를 돕는 시늉을 하며 이상화 시비 아래 들병이 아주머니들에게 소주, 음료수 심부름을 하기도 했단다.
양아치 대장, 선녀보살 등이 등장하는 당시 토성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압권이라 할 만큼 재미난다. 작가의 페북에 일부 소개되어 항간에 큰 화제를 모으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제목인 ‘레드빈 케이크(Red-bean Cake)’에 대해서 말할 땐 작가는 여느 때보다 들떠 있다. “칼 구스타프 융 식으로 말한다면 내게 적두병은 모든 ‘죽음의 유혹’에 대한 반항이며 ‘제 한 몸으로 감싸는 상징’이다 내 안의 모든 갈라진 것들은 그것 안에서 융합한다.”고 다소 거창하게 서두를 꺼낸다. 적두병은 ‘나’가 성인이 되어 토성 어느 한쪽에 있는 만난 가게의 상호다. 이 적두병이 팥떡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무의식의 저편에 있는 것을 끌어내고야 만다. 오래전 어머니가 팥이 들어간 풀빵 장사를 할 때, 길도 익히지 못한 ‘나’가 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풀빵에 들어갈 팥소를 아이에게 먹이는 장면을 작가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적두병 이야기 끝에 밀란 쿤데라와 로렌 아이슬리의 소설을 떠올리며 또 어머니를 회상하는 것은 이후 그 아이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아픔을 겪고 성장하면서 대학의 교수가 되고 소설가가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토성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는 토성 출신의 아내를 운명처럼 맞이하여 동행하고 있다.
소설 『레드빈 케이크』의 발행일이 우연찮게 5.8일인 것이 눈에 띈다. 다리가 아프다며 생일상에도 앉지 못하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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