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공장신문/처를 때리고/ 질소비료공장

톰소여와허크 2025. 2. 16. 23:29

 

공장신문/처를 때리고(김남천), 질소비료공장(이북명), 한국헤르만헤세

 

-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논술대비 한국문학이란 표제를 달긴 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는 두 작가의 작품을 출판 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평가할 만하다.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1937)는 출판 사업을 꿈꾸는 식민지 지식인의 이중적 태도를 잘 포착해낸 작품이다. 나머지 두 작품은 1930년 초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

김남천(1911-1953)은 평양 성천 출신으로 평양고보를 졸업한 일본 유학파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임화와 함께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와 조선문학가동맹의 주요 인물로 활동한다. 김남천은 공장신문(1931)의 배경이기도 한 평양고무공장 파업을 지지하고 선전하는 일로 감옥에 복역하게도 되지만 노동자 신분은 아니었다. 반면에 이북명(1910-1988)은 함흥 출신으로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실제 흥남질소비료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질소비료공장(1932)엔 작가 자신의 노동 경험이 반영되어 공장 상황과 파업에 이르게 되는 과정들이 현장감 있게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소설 질소비료공장의 중심인물은 문길이다. 네 아이의 가장인 문길은 건강한 체질이었으나 4년간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몸을 망치게 된다. 그 이유는 기름때가 까맣게 밴 위에 흰 구두약 같은 유안(황산과 암모니아를 반응시켜 만든 흰 결정)의 모액이 더덕더덕 묻은 작업복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는 말로 짐작할 수 있다. 회사는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병을 치료하는 데 역할을 하지 않고 신체검사를 통해 병이 있는 노동자를 색출해서 해고를 통고할 뿐이다. 갖가지 부당한 대우에 각성한 노동자들은 몰래 친목회 활동을 조직하며 삐라를 돌리고 노동 개선을 요구한다.

회사 측이 발광적이라면 그들은 또한 결사적이란 표현에서 노사의 엇갈린 이해관계와 대립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노동자 대표 격인 철식이는 뺨을 맞구만 있을 것이 아니라 마주 냅다 갈길 줄도 알구, 제것을 뺏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찾아낼 줄도 알아야 하오. 싸움이 없이 공짜로 생기는 것이란 세상에 하나도 없소.”란 말로 이전의 일방적 노사 관계에서 벗어나서 노동자가 목소리를 좀 더 내면서 노사 균형을 맞추는 세상의 일면을 그려보게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문길과 동료들이 노동운동에 나서지만 고용주의 노동탄압도 거세진다. 회사 중간 간부들을 내세워 감시하고 일본 경찰의 힘을 빌려 노동운동하는 노동자를 옥죈다. 끝내 감옥에 갇혀 고문까지 받게 된 문길은 사망하고 만다. 문길의 상여를 따르던 공장 노동자들이 비장한 마음으로 메이데이의 노래(“들어라 만국의 노동자/ 천지를 진동하는 메이데이를로 시작되는 노래로 그 가사는 만국의 노동자를 위하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일본 군가에 가사를 붙인 게 밝혀져 현재의 정서와 거리가 있다고 해야겠음)를 부르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 질소비료공장1932년 조선일보에 2회 연재되고 검열에 걸려서 연재를 그만두어야 했다. 소설 연재 시 판화 세 점이 삽화로 쓰였다. 화가(연극인) 이상춘(1910-1937)이 작업한 것이다. 대구 출신 이상춘과 함흥 출신 이북명이 글과 삽화로 만난 것인데 둘의 관계도 궁금하다. 무산자를 위한 사회주의 예술에 뜻을 같이한 데다 1932년 무렵 상경한 이상춘이 안국동 뒷골목 2층 하숙방에 있었다고 하니 혹 이때 만날 일이 있지는 않았을까 짐작만 해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