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미, 『오순정은 오늘도』, 학이사, 2024.
책 뒤편 ‘작가의 말’을 읽으면, “그냥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살아지는 건 아닌, 삶의 고단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 생각이 소설로 결실한 것인 양, 작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은 대개 단내 폭폭 풍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오순정 가족의 이야기도 그렇다. 곱창집 주인 최미숙과 곱창집 직원 오순정은 어려운 형편에 악착같이 일하며 살았다. 다만, 현재와 노후 형편은 꽤 차이가 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최미숙은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복을 받은 것으로 얘기하지만 오순정은 그 차이를 직감하고 있다. 무리해서라도 돈을 빚내서 집을 사고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라서 여유를 얻은 쪽과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내 집 장만의 기회는커녕 열심히 일하는 사이 상대적 빈곤은 더 심해진 쪽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오순정과 한 지붕 아래 남편으로 사는 평범한 회사원인 김종만은 지지리 궁상이 몸에 배인 오순정에 정이 떨어지다가도 딸, 아들을 보며 흥을 내는 남자다. 그는 소설 쓰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고 그 꿈을 위해 글쓰기 강좌를 신청하면서 아내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남편의 꿈에 대한 오순정의 답은 현실이다. 온몸에 파스 붙이며 일하는 자신에게 남편이 보태는 월급이란 것도 시어머니 요양원에 돈 보내고 애들 학원비 내면 끝이다. 꿈이 있어야 산다는 남편에게 “뭐? 사람이 꿈을 가져야 한다고? 너는 내 꿈이 뭔지 알아? 누구는 그런 거 없어서 이렇게 사는 줄 아냐고!”고 항변하는 오순정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김종만은 생각한다.
그런 김종만은 뜻밖의 일로 가출을 하게 되고, 아내처럼 지지리 궁상인지 아니면 낭만인지 바닷가의 허름한 집에 세를 얻어 글 쓰며 사는 시늉을 하게 된다. 김종만에 대한 이해는 딸 김하나의 사연으로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겠다. 김하나를 학교폭력으로부터 구해주고 또 다른 피해자가 된 친구가 김하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꿈이 왜 꿈으로만 끝나는지 아냐? 사람들은 안 될 이유만 찾거든. 너처럼 생각이 많으면 계산기 두드리다 인생 끝나는 거야”며 때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권하고 스스로 그런 모범을 보여준다.
김종만이 이해된다고 해서 오순정이 부정되는 건 전혀 아니다. 책을 읽은 다수의 사람들은 오순정의 팬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하며 고양이 치료비 걱정하는 여자 이야기, 몸과 정신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와 그들의 부모 이야기, 식구를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로 고심하는 가족 이야기, 좋은 기억만 갖고 죽음을 선택하려는 여자를 둘러싼 가족 갈등 이야기 등에 오순정을 닮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극적이면서도 실제 모습을 보는 듯 생생하다. 이러한 리얼리티는 작가가 곱창집에서 일하고, 편의점에서도 일하며 열심히 사는 것으로 글쓰기 습작을 대신한 면과도 관련이 있을 줄 안다.
소설집 『오순정은 오늘도』란 제목처럼 수많은 오순정도 오늘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삶이 고단하다 해서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 유쾌한 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슬며시 웃음을 띠게도 된다. 무엇보다 사는 것의 의미를 꾸준히 묻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이 책의 매력으로 꼽고 싶다. 책 안에서든 밖에서든, 오순정을 만나면 그냥 반기는 마음이 될 것이다.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공장신문/처를 때리고/ 질소비료공장 (0) | 2025.02.16 |
---|---|
<산문>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0) | 2025.02.12 |
<산문>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0) | 2025.02.04 |
<소설> 빨간 풍차가 있는 집 (0) | 2025.02.01 |
<에세이> 시인과 화가 (0) | 2025.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