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6,107km

톰소여와허크 2025. 3. 3. 20:16

 

우동윤,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6,107km, 학이사, 2024.

 

- 저자 우동윤은 방송국 기자이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그는 오토바이 타는 것도 즐긴다. 이 세 가지 일 혹은 취미가 책으로 결실했다. 방송국 기자답게 의미 있는 기삿거리를 찾듯 나선 게 일본에 의한 조선인 강제 동원의 흔적이다. 사진작가답게 강제 동원의 현장과 주변 상황을 기록사진으로 남겼고, 바이크족답게 현장에서 현장으로 이동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저자는 관부 연락선을 타는 것으로 한 달여의 일본 일주를 시작했다.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을 잇는 항로는 1905년부터란다. 두 항구에서 일본 내륙 철도와 한국 내륙 철도까지 연결되면서 강제 동원이 수월하게 이루어졌고 그 연락선을 통해 일본 전역의 탄광, , 철도 공사 등에 조선인이 투입되고 그중에 수만 명의 조선 노동자가 희생된 걸로 보고 있다.

 

강제 동원의 흔적을 더듬는 저자를 따라 몇몇 장소를 따라가 본다. 저자는 일본 속의 한국사적(2001) 내용을 참고로 조선인 3,000명이 동원되었다는 효고현의 이마루베철교를 찾았다.저자는 공사 중 희생된 조선인 7명을 위한 초혼비를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책의 표기가 불확실해 곤란을 겪는다. 구글맵과 스트리트뷰 기능 등으로 탐사 장소의 범위를 줄이고 추정해서 초혼비를 찾았을 때 저자는 감격스러워한다. 일곱 명의 이름이 선명한 비석을 사진에 담았을 때 후손이 아니더라도 그 사진 비석을 쓸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줄 안다.

 

기후현 노다터널은 지하 군수공장과 연결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공사란다. 여기에 조선인 140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어렵게 찾은 이곳을 다른 이들이 찾기 싶도록 구글맵에 위치 정보와 설명까지 올린다. 등재 여부를 미심쩍어하면서도 그렇게 행하는 것이 자신의 도리를 다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조선인 노동자의 고용을 두고 강제 동원이나 자발적 취업이냐는 논박이 있음을 인정하고 의문도 갖는다. 히로시마현 고보댐은 희생자가 많아 인골댐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여기서 만난 추도비는 이번 일본일주에서 본 문구 중 가장 직접적인 사과의 표현이 있다고도 했다. “강제로 끌고 갔다는 뜻의 연행(連行)’이란 표현까지 쓴 것은 이곳이 피폭 피해자 모임 등 반전, 평화 운동의 고장이기 때문일 것으로 저자는 짐작한다.

 

저자가 찾은 조선인 위령비나 추모비는 대체로 외곽의 인적이 뜸한 곳에 쓸쓸히 방치되다시피 한 것이 많다. 물론, 이만한 것이라도 남겨놓은 정성까지 야박하게 봐서는 안 되겠다. 저자는 강제 동원은 아니지만 윤동주 시비가 있는 도시샤대학 교정도 찾는다. 도시샤대학은 개인 기념물 설치를 금지하지만 윤동주 시비만 예외로 인정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대학 건학 이념을 보고서야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도시샤대학의 건학 이념은 양심이다. 저자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의 서시가 스쳐 간다.

 

저자의 오토바이는 현장 답사와 공부의 수단이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지날 때는 바이크족으로 운전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홋카이도 서부 해안도로 오로롱라인을 달릴 때는 바다와 초원을 번갈아 보며 근심도 같이 날린다. 아키요시다이카르스트와 츠노시마대교를 차례로 달리며 대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장관을 거듭 느낀다. 그 어딘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친구 같다는 애정 표현도 저자는 잊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는 나도, 책을 읽는 동안 역사의 흔적을 찾는 여정에 동승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도 든다. 공짜로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한 셈이지만 옷 앞자락을 바람에 부풀리며 오토바이 타는 기분과는 좀 다르긴 할 것이다. 시골 장 다니는 스쿠터 라이더의 꿈을 이루더라도 저자와 함께 다니긴 쉽지 않겠다. (이동훈)